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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고화【膏火】기름과 불. 기름은 불을 밝힐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저를 태워 주위는 밝게 하지만 그 대신 저는 타서 없어지는데, 마치 인간도 그 재능이 인정되면 그 재능을 이용하여 남은 다스리지만 역시 언젠가는 그 재능으로 인하여 화를 당하는 수가 있음을 비유한 것. 《莊子 人間世》

고화【膏火】밤에는 기름불로 밝은 것을 얻고 낮에는 불같은 햇빛으로 밝게 되므로, 기름과 불이라 하여 주야(晝夜)를 말하는 것이다.

고화열유갱【苽花說儒坑】진 시황(秦始皇)이 서적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죽였는데, 이때 소평(召平)은 진(秦)의 동릉후(東陵侯)였다. 진이 망하자 벼슬하지 않고 장안(長安)의 성문 동쪽에서 오이를 심어 먹고 가난하게 살았다. 《史記 卷五十四 蕭相國世家》

고화쟁전박【膏火爭煎迫】이 말은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산의 나무는 쓸모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해를 당하고, 기름은 불이 붙기 때문에 스스로 저를 태운다[山木自寇也 膏火自煎也].” 한 데서 온 말로, 즉 사람도 능력이 있기 때문에 화를 당함을 비유한 말인데, 사람들이 이욕에 급급하여 스스로 화를 재촉함을 말한다.

고황【顧况】당 덕종(唐德宗) 때의 시인. 자는 포옹(逋翁), 호는 화양진일(華陽眞逸).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했음. 저서에는 화평(畵評)ㆍ화양집(華陽集)이 있음.

고황【膏肓】본디 다스릴 수 없는 고질(痼疾)을 말한다. 좌전(左傳)에, 진후(晉侯)가 병이 있어 이름난 의원을 청했더니, 의원은, “병이 벌써 고(膏)의 밑 황(肓)의 위에 들어갔으니 치료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고(膏)는 심(心)의 밑이요, 황(肓)은 격(鬲)의 위이다.

고황부천석【膏肓負泉石】당나라 은사(隱士) 전유암(田遊巖)이 기산(箕山)에 들어가 사는데, 고종(高宗)이 친히 그 집에 찾아가니, 유암이 야복(野服)으로 나와 영접하였다. 고종이, “선생은 근일에 평안하신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臣)은 연하고질(煙霞痼疾)이요, 천석고황(泉石膏肓)입니다.” 하였다.

고황유치평성재【高皇遺恥平城在】한 고조(漢高祖)가 흉노(匈奴)를 토벌하러 평성(平城)에 갔다가 백등(白登)에서 7일 동안이나 포위되는 수모를 겪은 뒤 진평(陳平)의 계책으로 간신히 빠져 나왔던 고사가 있다. 《漢書 高帝記》

고황재천석【膏肓在泉石】산수(山水)를 너무도 사랑하여, 마치 불치(不治)의 고질병처럼 되었다는 말이다.

고황제【高皇帝】명(明) 나라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을 가리킨다.

고황지질【膏肓之疾】깊이 든 병

고황천석심녕속【膏肓泉石心寧俗】산수(山水)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 정도에 지나쳐서 마치 불치(不治)의 고질과 같이 되면 마음이 속되지 않다는 말이다. 고황(膏肓)은 곧 심장과 격막 사이의 부분인데 이곳에 병이 들면 침이나 약으로 고칠 수 없다 한다. 《左傳》 성공(成公) 10년에 “병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심장[膏]의 아래, 격막[肓] 위에 있으니 어찌할 수가 없다.” 하였다.

고후【故侯】고후는 옛 진(秦) 나라 때의 동릉후(東陵侯) 소평(邵平)을 이르는데, 동릉후 소평이 진 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포의(布衣)가 되어 장안성의 청문 밖에 오이를 재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한다.

고희【古稀】70세.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에 “사람이 칠십까지 살기가 예로부터 드물었다[人生七十古來稀].”고 한데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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