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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구경

 

 

 

 

공과상반【功過相半】공로와 허물이 반반이다. 공과상저(功過相抵).

공관주후문【公寬柱後文】황정견이 최공도(崔公度)를 보내는 시에 “백성들은 허리에 찬 칼을 팔 것이고 공은 법조문을 관대하게 하리라[民賣腰間劍 公寬柱後文]” 한 데서 온 말이다. 《黃山谷詩集 卷八》

공광【孔光】한(漢) 나라 사람. 사람됨이 공평무사하였고 조정의 일을 절대로 누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서(漢書) 孔光傳 贊에는 “선비의 옷을 입고 선왕(先王)의 말을 전하였으니 그 도량은 좋지만, 녹위(祿位)만은 끝까지 보유하려 하였으므로 아첨한다는 기롱을 받았다.”고 하였다.

공광온실【孔光溫室】공광은 퇴궐하여 형제처자와 함께 집에 있을 적에도 조정에 관계된 일은 일체 말하지 않았는데, 누가 온실전 안에 있는 나무들의 종류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전연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만하였다는 고사이다. 《漢書 卷八十一 孔光傳》

공구【攻駒】공구는 곧 말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공군【孔君】공군은 후한(後漢) 헌제(獻帝) 때 북해상(北海相)이 되었다가 뒤에 조조(曹操)와 뜻이 맞지 않아 그에게 피살된 공융(孔融)을 말한다.

공군【贛君】설선(薛宣)의 자(字)이다. 당시의 권세가 왕봉(王鳳)의 추천을 받고 장안 영(長安令)이 된 뒤 고위 관직을 역임하며 장우(張禹) 후임으로 승상이 되었는데, 벼슬을 그만둔 주운을 만나 깍듯이 대접하면서 자기 집에 머물러 줄 것을 청하자, 주운이 “소생(小生)이 나를 관리 취급을 하려고 하는가.” 하고 면박을 주었던 고사가 있다. 《漢書 朱雲傳》

공군원저어【孔君元齟齬】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로서 일찍이 북해상(北海相)과 태중대부(太中大夫) 등을 역임하고, 뒤에 조조(曹操)와 사이가 좋지 않으므로 인하여 끝내 조조에게 처형되었던 공융(孔融)을 가리킨다. 《後漢書 卷七十》

공군저어【孔君齟齬】공군은 송 철종(宋哲宗)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지낸 공문중(孔文仲)을 가리킨다. 성품이 강직하여 재상 왕안석(王安石)이 창안한 재정 관리와 군사 훈련하는 법이 옳지 않다고 논한 일로 파직되기도 하였다.

공군저어【孔君齟齬】공군은 후한(後漢) 헌제(獻帝) 때 북해상(北海相)이 되었다가 뒤에 조조(曹操)와 뜻이 맞지 않아 그에게 피살된 공융(孔融)을 말함.

공규【孔戣】당(唐) 나라의 명신. 헌종(憲宗) 때 간의대부(諫議大夫)가 되어 이섭(李涉)의 망상(罔上)하는 죄상을 탄핵하고 이소화(李少和)ㆍ최이간(崔易簡)의 옥사(獄事)를 판결했으며, 목종(穆宗) 때에 사퇴를 빌자, 한유(韓愈)가 “조정에 공규 같은 인재는 3~4명밖에 되지 않으니, 사퇴를 만류해야 한다.” 하였다. 《新唐書 孔戣傳》

공극【拱極】공신(拱辰)과 같은 말로, 뭇별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처럼 덕정(德政)을 펼치는 중국의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덕정(德政)을 펴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북극성 쪽으로 뭇별들이 향하는 것처럼 될 것이다.[北辰居其所 而衆星拱之]”하였다.

공당【孔堂】공당은 공자(孔子)가 사는 집의 당이다. 공자의 문인들이 자로(子路)를 공경하지 않자, 공자가 말하기를, “유(由)는 당에는 올랐고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하면서 자로를 추켜 주었다. 《論語 先進》

공대부【孔大夫】공대부는 곧 후한(後漢) 때의 태중대부(太中大夫)였던 공융(孔融)을 가리킨다. 그는 성품이 너그럽고 선비들을 좋아하여 항상 빈객(賓客)이 문에 가득하였는데, 그가 일찍이 감탄하기를 “자리 위에는 빈객이 항상 가득하고, 동이에는 술이 항상 비지 않으니 나는 근심할 일이 없다.” 하였다. 《後漢書 卷七十 孔融傳》

공덕천【功德泉】공덕천은 불가의 말인데, 감(甘)ㆍ냉(冷)ㆍ연(軟)ㆍ경(輕)ㆍ청정(淸淨)ㆍ불취(不臭)ㆍ불손후(不損喉)ㆍ음이불상장(飮已不傷腸) 등 여덟 가지의 공덕수가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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