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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인간적인 욕망의 초월에서 얻어진다
- 장자(내편) 제6편 대종사[8]-
남백자규가 여우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나이가 많으면서도 얼굴빛이 아이들과 같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여우가 대답했다. “나는 도에 관해서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남백자규가 말했다. “도는 배울 수 있는 것입니까?” 여우가 말했다. “당신은 그럴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복양의라는 사람은 성인의 재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성인의 도는 지니고 있지 못했습니다. 나는 성인의 도는 지니고 있지만 성인의 재능은 지니지 못 했습니다. 나는 그를 가르치려 하였지만 그가 성인이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대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성인의 도를 가지고 성인의 재질이 있는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나는 그에게 도를 닦게 하며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흘 뒤에는 천하를 잊게 되었고, 천하를 잊게 된 뒤 또 도를 닦게 하니 물건을 잊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잊게 된 뒤 다시 도를 닦게 하니 구일 뒤에는 삶을 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을 잊은 뒤에는 아침 햇살처럼 깨달음이 열렸고, 깨달음이 열린 뒤에는 유일한 도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를 볼 수 있게 된 뒤에는 시간의 변화가 없게 되었습니다. 시간의 변화가 없게 된 뒤에는 불사불생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멸시키는 변화의 도리는 그 자체로서는 사멸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것에 생명을 주는 조물주는 그 자체로서는 생성하지는 않습니다. 나고 죽음의 배후에 있는 도는 나고 죽음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 도는 사라져 가는 것은 사라져 가는 그대로 보내고, 오는 것은 오는 그대로 맞아들입니다. 멸하는 것은 멸하는 그대로 맡기고 생겨나는 것은 생겨나는 대로 맡겨둡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맡겨두는 것입니다. 이 도의 상태를 영녕(攖寧)이라 부릅니다. 영녕이란 스스로는 만족하여 정지하면서 만물은 생성하는 것입니다.” 남백자규가 말했다. “선생님은 어디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셨습니까?” 여우가 말했다. “부묵의 아들에게서 들었습니다. 부묵의 아들은 낙송의 손자에게 들었고, 낙송의 손자는 첨명에게 들었고, 첨명은 섭허에게 들었으며, 섭허는 수역에게 들었고, 수역은 어구에게 들었으며, 어구는 현명에게 들었고, 현명은 참료에게 들었으며, 참료는 의시에게 들었다고 합니다.”
- 莊子(內篇) 第6篇 大宗師[8]- 南伯子葵問乎女偊曰:「子之年長矣, 而色若孺子, 何也?」 曰:「吾聞道矣.」 南伯子葵曰:「道可得學邪?」 曰:「惡! 惡可! 子非其人也. 夫卜梁倚有聖人之才而无聖人之道, 我有聖人之道而无聖人之才, 吾欲以敎之, 庶幾其果爲聖人乎! 不然, 以聖人之道告聖人之才, 亦易矣. 吾猶告而守之, 三日而候能外天下. 已外天下矣, 吾又守之, 七日而後能外物. 已外物矣, 吾又守之, 九日而後能外生. 已外生矣, 而後能朝徹. 朝徹, 而後能見獨. 見獨, 而後能无古今. 无古今, 而後能入於不死不生. 殺生者不死, 生生者不生. 其爲物, 無不將也, 無不迎也. 無不毁也, 無不成也. 其名爲攖寧. 攖寧也者, 攖而後成者也.」 南伯子葵曰:「子獨惡乎聞之?」 曰:「聞諸副墨之子, 副墨之子聞諸洛誦之孫, 洛誦之孫聞之瞻明, 瞻明聞之聶許, 聶許聞之需役, 需役聞之於謳, 於謳聞之玄冥, 玄冥聞之參寥, 參寥聞之疑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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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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