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닷컴ː漢詩採集한시채집

하늘구경  



 

杜甫[두보] 醉時歌[취시가] 취하여 부르는 노래
 글쓴이 : 하늘구경
조회 : 2,556  

 

醉時歌[취시가] 취하여 부르는 노래

 

- 杜甫[두보] -

 

諸公袞袞登臺省[제공곤곤등대성] 남들은 줄줄이 요직에 오르는데

廣文先生官獨冷[광문선생관독랭] 광문선생 벼슬만 홀로 냉관이로다

甲第紛紛厭梁肉[갑제분분염양육] 호화저택 즐비한 고량진미 물리는데

廣文先生飯不足[광문선생반부족] 광문선생 집은 끼니 잇기도 어렵네

先生有道出羲皇[선생유도출희황] 선생의 도덕은 복희씨를 넘어서고

先生有才過屈宋[선생유재과굴송] 선생의 재주는 굴원 송옥에 앞서나

德尊一代常轗軻[덕존일대상감가] 덕망 일대에 높아도 항상 불우하니

名垂萬古知何用[명수만고지하용] 명성 만고에 드린들 무슨 소용있나

杜陵野客人更嗤[두릉야객인갱치] 두릉 촌사람은 더 사람들 웃음거리

被褐短窄鬢女絲[피갈단착빈여사] 거친 베옷 초라하고 머리칼 헝클어져

日糴太倉五升米[일적태창오승미] 날마다 태창에서 쌀 닷 되 사오고

時赴鄭老同襟期[시부정노동금기] 때로 정노인 찾아 흉금을 털어놓네

得錢卽相覓[득전즉상멱]          돈이라도 생기면 바로 서로 찾아가

沽酒不復疑[고주불부의]           망설일 것 없이 술을 사 마시며

忘形到爾汝[망형도이여]           겉치레 버리고 서로 너나 하게 되니

痛飮眞吾師[통음진오사]           흠뻑 취함이 진정 나의 스승이라

淸夜沈沈動春酌[청야침침동춘작] 맑은 밤 깊어가고 봄 술잔 오가니

燈前細雨簷花落[등전세우첨화낙] 등잔 앞에 가랑비 처마에는 지는 꽃

但覺高歌有鬼神[단각고가유귀신] 높이 부르는 노래 귀신들린 듯하니

焉知餓死塡溝壑[언지아사전구학] 굶어 죽어 도랑에 처박히든 말든

相如逸才親滌器[상여일재친척기] 사마상여 그 재주에 손수 그릇 닦았고

子雲識字終投閣[자운식자종투각] 글 잘 아는 양자운 천록각서 투신했네

先生早賦歸去來[선생조부귀거내] 선생도 일찌감치 귀거래사 읊으시라

石田茅屋荒蒼苔[석전모옥황창태] 돌밭 띠 집 푸른 이끼에 황폐하다네

儒術於我何有哉[유술어아하유재] 유가의 학술이 내게 무슨 소용인가

孔丘盜跖俱塵埃[공구도척구진애] 공자나 도척이나 모두 티끌먼지 된 걸

不須聞此意慘愴[불수문차의참창] 그렇다고 서글픈 맘 가질 것은 없고

生前相遇且銜盃[생전상우차함배] 사는 동안 서로 만나 술잔이나 드세나

 

<醉時歌취시가 / 취하여 부르는 노래 / 杜甫두보 : 贈廣文館博士鄭虔증광문관박사정건>

 


두보[杜甫]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두릉야로(杜陵野老), 두릉포의(杜陵布衣) 등이 있다. 양양(襄陽) 지방 출신으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40대인 천보(天寶) 14(755)에야 비로소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당시 장안에서 반군에게 잡혔다가 탈출, 숙종(肅宗)의 진영에 합류하여 좌습유(左拾遺)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지낸 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두습유(杜拾遺), 두공부(杜工部) 등으로 불렀고, 또 장안성 밖 소릉(少陵)의 초당(草堂)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두소릉(杜少陵), 두초당(杜草堂)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함께 이두(李杜)로 불렸는데, 두목(杜牧)과 이상은(李商隱)의 합칭인 소이두(小李杜)와 구별하기 위해 대이두(大李杜)라고도 부른다. 문학을 발판 삼아 벼슬로 나아가려던 그의 꿈이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짧은 한때를 빼고는 평생을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중국의 서북 지역을 유랑하다가 결국 병사했다. 벼슬살이와 달리 문학, 특히 시에서 이룬 성취가 대단하였다. 남긴 시가 1500여 수에 달하며 작품집으로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그 자신은 시성(詩聖)으로, 또 그의 시는 시사(詩史)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광문관[廣文官] ()나라 때 7() 중의 하나이다. 천보(天寶) 9년 국자감(國子監)에 광문관(廣文館)을 증설하여 박사(博士조교(助敎)를 두어 국자학생(國子學生) 중에 진사(進士) 시험 준비를 하는 자들을 지도하도록 하였다. 정건(鄭虔)이 일찍이 광문박사(廣文博士)를 맡았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이 한직(閑職)으로 여겼다.

제공[諸公] 여러분을 문어체로 이르는 말. 여기서는 조정(朝廷)에서 벼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곤곤[袞袞] 줄지어. 끊이지 않고 연달아 이어지는 것을 형용한 말. 많다. 수두룩하다. 끝이 없다. 권세가 대단한 모양.

대성[臺省] 당대(唐代)의 중앙 요직을 말한다. ()는 어사대(御史臺)를 이르고, ()은 중서성(中書省), 상서성(尙書省), 문하성(門下省)을 말한다.

냉관[冷官] 냉관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한산(閑散)한 관직을 말하고, 열관(熱官)은 권세가 막강한 관리를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 여인행(麗人行)손대면 델 만큼 권세가 비길 데 없으니, 삼가 가까이 가지 마라 승상이 노여워할라.[炙手可熱勢絶倫 愼莫近前丞相嗔]”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2>

갑제[甲第] 훌륭한 집, 제일 좋은 주택. 최고의 저택(邸宅). ()甲乙丙丁의 갑(). ()는 집을 의미한다. 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큰 저택을 내렸다(賜大第室)”는 말이 있는데, 맹강(孟康)갑과 을의 차서가 있기 때문에 제라 하였다(甲乙次第)”고 주석을 달았다. 구당서(舊唐書) 양국충전(楊國忠傳)귀비의 언니는 괵국부인인데 양국충이 그녀와 사통(私通)하였다. 선의리(宣義里)에 잇닿은 갑제(甲第)를 지었는데 공사를 할 때에 온갖 화려함으로 치장하여, 저택의 으리으리함이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에서 견줄 바가 없었다.[貴妃姐虢國夫人 國忠與之私 於宣義里構連甲第 土木被綈繡 棟宇之盛 兩都莫比]”는 기록이 있다.

분분[紛紛] 떠들썩하고 뒤숭숭함. 흩날리는 모양이 뒤섞이어 어수선함. 의견 등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많고 어수선함. 꽃 따위가 흩어져 어지러운 모양. 사물이 흐트러짐. 많은 것이 뒤섞여 있는 모양. 일이 많아 바쁜 모양. 잇달아. 몇 번이고. 쉴 사이 없이. 계속하여. 분란(紛亂). 왕안석(王安石)의 시 도원행(桃源行)요순의 태평성대 한 번 간 뒤 오지 않고, 천하가 진의 폭정 몇 차례나 겪었던가.[重華一去寧復得 天下紛紛經幾秦]”라고 하였다.

양육[粱肉] 양육은 기장으로 밥을 짓고 고기로 반찬을 삼는다는 뜻으로, 보통 잘 차려진 밥상 또는 사치스러운 음식을 가리킨다.

고량진미[膏粱珍味] 살진 고기와 좋은 곡식(穀食)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飮食).

희황[羲皇] 상고(上古) 때의 제왕(帝王). 삼황(三皇)의 하나인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의 존칭이다. 주역(周易)의 팔괘(八卦)를 처음 그리고, 그물을 만들어 수렵과 어획을 가르친 인물이라고 전한다. 그 시대의 백성들이 근심 없이 순박하고 한적하게 살았으리라 하여 고인들은 그의 시대를 태평한 이상 시대로 상정하였고, 은자들이 자칭 희황상인(羲皇上人)이라 하였다. 일찍이 진()나라의 시인 도잠(陶潛)의 글에 오뉴월 여름철에 북창 아래에 누워 있다가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오면 스스로 복희씨 시대의 사람이라고 여기곤 했다.[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라는 구절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7 與子儼等疏> 이백(李白)이 이를 차용하여 지은 희증정율양(戲贈鄭溧陽)소금은 본래 줄이 없고, 술 거를 땐 갈건을 사용하지. 맑은 바람 부는 북창 아래 누워, 스스로 태곳적 사람이라 하네.[素琴本無絃 漉酒用葛巾 淸風北窓下 自謂羲皇人]”라고 하였다.

굴송[屈宋] 전국(戰國) 시대 초() 나라의 불우했던 시인 굴원(屈原)과 그의 제자 송옥(宋玉)의 병칭으로 모두 사부(詞賦)의 대가이다. 남조 송(南朝宋)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굴원 송옥의 뛰어난 걸음은 아무도 뒤따를 자가 없다.[屈宋逸步 莫之能追]”라고 하였고, () 나라 두심언(杜審言)은 자신의 문장을 자랑하여 말하기를 나의 문장은 굴원(屈原)과 송옥(宋玉)을 불러다가 심부름꾼을 삼을 만하고, 나의 필체는 왕희지를 신하로 삼을만하다.[吾文章當得屈宋作衙官, 吾筆當得王羲之北面.]”라고 하였다.

감가[坎坷] 행로(行路)가 평탄하지 못하여 수레가 잘 굴러 나아가지 못함을 이른다. 전하여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때를 만나지 못하여 불우한 처지에서 실의(失意)에 차 있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감가(坎軻). 감가(坎坷).

두릉[杜陵] 두릉은 오늘날 섬서(陝西) 서안시(西安市) 동남에 있던 당나라 때의 지명이다.


 



번호 제     목 조회
554 李白[이백] 月下獨酌四首其四[월하독작4수4] 시름은 많고 술은 적으나 2284
553 李白[이백] 月下獨酌四首其三[월하독작4수3] 비단 같은 춘삼월 함양성에 1974
552 羅隱[나은] 自遣[자견] 스스로 마음을 달래다 2103
551 白居易[백거이] 春眠[춘면] 봄 잠 1823
550 溫庭筠[온정균] 送人東遊[송인동유] 동쪽으로 가는 벗을 전송하며 1398
549 白居易[백거이] 寒食野望吟[한식야망음] 한식날 들을 바라보며 읊다 1775
548 杜甫[두보] 柟樹爲風雨所拔歎[남수위풍우소발탄] 남나무가 뽑힘을 탄식하다 1380
547 杜甫[두보] 秋興八首[其八]추흥8수8 / 백발로 읊조리다 고개 떨구네 1755
546 杜甫[두보] 秋興八首[其七]추흥8수7 / 가을에 이는 정회 1837
545 杜甫[두보] 秋興八首[其六]추흥8수6 / 비단 닻줄 상아 돛대 1377
544 杜甫[두보] 秋興八首[其五]추흥8수5 / 한 해를 보냄에 놀라 1566
543 杜甫[두보] 秋興八首[其四]추흥8수4 / 관산에 금고소리 진동하고 1419



 1  2  3  4  5  6  7  8  9  10    
 
 


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열자

한비자 / 육도삼략 / 소서 / 손자병법 / 전국책 / 설원 / 한서 / 고사성어 / 옛글사전

소창유기 / 격언연벽 / 채근담(명) / 채근담(건) / 명심보감(추) / 명심보감(법) / 옛글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