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졸옹[崔拙翁] 졸옹은 최해(崔瀣)의 호. 예산농은(猊山農隱)이라고도 한다.
♞최중령[崔中令] 최충(崔冲). 그는 현종(顯宗) 때로부터 문종(文宗) 때까지 문(文)·무(武)의 큰 공으로 중서문하성령(中書門下省令)이 되고, 아들 유선(惟善)이 중서령(中書令), 유길(惟吉)은 상서령(尙書令)이 되어, 왕이 베푸는 국로연(國老宴)에 두 아들이 아버지를 부액(扶掖)하고 참예하니, 희한한 성사(聖事)라 일렀다. <高麗史 崔冲傳>
♞최최[崔崔] 산이 우뚝하게 높은 모양, 높고 큰 모양.
♞최해[崔瀣] 경주인(慶州人)인데 자는 언명(彦明)이고 호는 졸옹(拙翁)이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8년에 원(元)의 제과(諸科)에 합격하여 개주 판관(蓋州判官)에 제수되었는데 병을 칭탁하고 본국으로 돌아와 검교성균대사성(檢校成均大司成)이 되었다. 이지현의 폐흥(廢興)의 전말을 기록한 비문을 지었다.
♞최해주[崔海州] 광해군 8년 해주 목사(海州牧使)로 있으면서 이른바 ‘해주옥(海州獄)’을 다스렸던 최기(崔沂)를 말한다. 이때 이이첨(李爾瞻)의 일파인 박희일(朴希一)과 박이빈(朴以彬)을 무고죄로 처형하여 이이첨의 미움을 받은 나머지 남형죄(濫刑罪)로 투옥되어 고문을 받고 옥사(獄死)했으며, 뒤에 다시 대역죄(大逆罪)로 몰려 멸문(滅門)의 화를 당하면서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國朝人物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