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생피리리양추[褚生皮裏裏陽秋] 진(晋) 나라 저부(褚裒), 자는 계야(季野)다. 그가 입으로 남의 잘잘못을 말하지 않으나 맘속으로는 시비(是非)가 분명했다. 환이(桓彝)가 그를 보고 평하여 “계야(季野)는 입으로는 말하지 않으나, 가죽 속에 양추(陽秋)가 있군.” 하였다. 양추는 곧 봄과 가을로 봄에는 상을 주고 가을에는 벌을 주니 시비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는 말이다.
♞저서원자궁수득[著書元自窮愁得] 곤궁하고 근심 걱정이 있을 때 비로소 글을 짓는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평원군우경전찬(平原君虞卿傳贊)에 “우경(虞卿)이 궁수(窮愁)하지 않았다면 글을 지어 후세에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였다.
♞저서희[狙芧喜] 치할(癡黠)은 어리석음과 교활함을 말하는데, 옛날 송(宋) 나라 저공(狙公)이 여러 원숭이에게 상수리를 아침에 세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성을 내므로,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고 하니, 원숭이들이 기뻐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눈앞에 당장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똑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과 간사한 꾀로 남을 농락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列子 黃帝>
♞저소손[褚少孫] 서한의 문학가이며 사학가이다. 지금의 하남성 우현(禹縣)인 영천(潁川) 출신으로 어렸을 때 지금의 강소성 패현(沛縣)인 패(沛)로 이주하여 살았다. 일찍이 당시의 저명한 유학자 왕식(王式)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원제(元帝)와 성제(成帝) 연간에 박사(博士)로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누락된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보찬(補撰)했다. 효무본기(孝武本紀), 삼왕세가(三王世家), 외척세가(外戚世家), 귀책열전(龜策列傳), 일자열전(日者列傳) 및 골계열전(滑稽列傳)을 보찬하거나 부록으로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