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서박적[淮西縛賊] 당(唐) 나라 헌종(憲宗) 때 장군 이소(李愬)가, 한밤중에 군사를 인솔하고 큰눈을 맞으며 70여 리를 달려 채(蔡)에 당도해서 반적(叛賊) 오원제(吳元濟)를 사로잡아, 회서(淮西)를 평정하고 큰 공을 세웠던 일을 말한다. <唐書 一百三十三 李愬傳>
♞회서훈업[淮西勳業] 당(唐) 나라 헌종(憲宗) 때 회서(淮西)에서 반란을 일으킨 오원제(吳元濟)의 도당을 평정한 배도(裵度)의 공을 말한다. <古文眞寶 後集 平淮西碑>
♞회석[懷石] 굴원(屈原)은 전국 시대 초(楚) 나라 충신이었는데, 참소를 받아 귀양을 가서 어부사(漁父辭)를 지어 깨끗한 자신은 탁한 무리들과 어울릴 수 없음을 말하였으며, 뒤에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다. 사기(史記) 굴원전(屈原傳)에 “마침내 회사(懷沙)의 부(賦)를 짓고 스스로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乃作懷沙之賦 遂自投汨以死]” 하였다. 회사의 부에는 굴원이 죽어야 했던 이유를 자세히 밝혔으므로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지으면서 이 말을 썼던 것인데, 뒷사람들은 잘못 돌을 품고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오인하고 사(沙) 자를 석(石) 자로 바꾸어 ‘회석’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회석[回舃] 수령직을 마치고 다시 조정에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 섭현(葉縣)의 수령이었던 왕교(王喬)가 물오리 두 마리를 타고서 서울에 올라오곤 하였는데, 이를 잡아서 살펴보니 옛날에 하사했던 상서성(尙書省)의 나막신 한 짝[一舃]이 있더라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後漢書 方術列傳 王喬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