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해가[少海歌] 진(晋) 나라 때 오(吳)의 회계(會稽)에 살았던 은사(隱士) 하통(夏統)이 평소 굳은 지조로 벼슬을 거절하고 은거하였는데, 그가 한번은 병든 모친의 약을 구하기 위해 낙양(洛陽)을 갔던 바, 이때 그의 범상치 않은 행동을 본 태위(太尉) 가충(賈充)이 그를 괴이하게 여겨 오(吳)의 지방에 관한 풍속 등 여러 가지를 묻고, 이어서 그 지방에 관한 가곡(歌曲)을 지어 부를 수 있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오자서(伍子胥)가 오왕(吳王)을 간(諫)하였으나 말은 쓰여지지 않고 도리어 죽임을 당하여 시체가 바다에 던져졌기에 나라 사람들이 그의 충렬(忠烈)을 가슴 아프게 여기므로, 내가 소해창(少海唱)을 지었으니, 지금 노래를 하겠다.”하고는 발을 구르며 힘차게 노래를 하니,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말하기를 “소해창을 들으니 오자서․굴원(屈原)이 바로 곁에 서 있는 것 같았다.”하였고, 가충은 말하기를 “이 오아(吳兒)는 바로 목인석심(木人石心)이다.”며 감탄했던 고사가 있다. <晋書 卷九十四> 목인석심(木人石心)은 곧 굳은 절조를 비유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