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張昭] 삼국 시대(三國時代) 오(吳) 나라 사람으로 손권(孫權)의 밑에서 보오장군(輔吳將軍) 등을 지냈는데, 일찍이 손권이 자기의 간언(諫言)을 들어주지 않는 데에 분심을 품고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자, 손권 또한 그가 조정에 나오지 않는 것을 원망하여 그의 문(門)을 흙으로 막았더니, 그는 또 그 안에다 흙더미를 더 쌓았다는 고사가 있다.
♞장소[張所] 송(宋) 나라 사람. 고종(高宗) 때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어 황잠선(黃潛善)과 왕백언(汪伯彦)의 간사함을 탄핵하다가 도리어 강주(江州)로 귀양갔다. 그 뒤 승상 이강(李綱)의 천거로 하북초무사(河北招撫使)가 되자, 장소는 사방의 호걸들을 모아 상실한 국토 수복의 계획을 하였으나, 이강이 승상에서 파직되자 그도 파면되어 영남(嶺南)에 안치, 거기에서 여생을 마쳤다.
♞장소[莊騷] 장자(莊子)와 굴원(屈原)의 이소(離騷)를 말한다.
♞장소[長嘯] 진(晉)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이 일찍이 소문산(蘇門山)에서 손등(孫登)을 만나 신기(神氣)를 수양하는 방법 등을 물었으나 손등이 모두 응답하지 않자 완적이 길게 휘파람을 불며 물러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四十九 阮籍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