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송위제[虞卿送魏齊] 자신의 일처럼 마음속 깊이 안타까워하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위(魏) 나라의 정승 위제(魏齊)가 진(秦) 나라 정승이 된 범수(范睢)와의 악연(惡緣) 때문에 궁지에 몰려 조(趙) 나라에 왔을 때, 당시 정승으로 있던 우경(虞卿)이 그의 딱한 처지를 불쌍하게 여긴 나머지 인끈을 풀어놓고 함께 도망쳐 신릉군(信陵君)을 찾아갔던 고사가 있다. <史記 范睢列傳>
♞우경쌍벽[虞卿雙璧] 우경은 전국 시대에 유세(游說)하던 사람으로서 조 효성왕(趙孝成王)을 설득하여 대번에 황금 백일(黃金百鎰)과 백벽 일쌍(白璧一雙)을 하사받았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七十六>
♞우경저술위궁수[虞卿著述爲窮愁] 전국 시대 우경(虞卿)이 양(梁) 나라에서 곤경에 처해 실의에 빠졌을 때 국가의 득실을 논한 이른바 우씨춘추(虞氏春秋) 8편을 저술하였는데, 이에 대해 사마천(司馬遷)이 “우경이 만약 궁수(窮愁)에 처하지 않았다면, 글을 지어 후세에 자기를 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평한 말이 있다. <史記 卷76 虞卿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