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전사벌초[王翦辭伐楚] 자신 없는 일은 착수하지 않음. 왕전(王翦)은 전국(戰國)시대의 이름난 장수로서 진시황(秦始皇)을 도와 조(趙)·연(燕)등의 나라를 평정하고 초(楚)를 치기 위해 다시 회의를 했는데, 이때 이신(李信)은 병력 20만을 요청한 데 반해 왕전은 60만 병력이 아니면 정벌에 나갈 수 없다고 하여, 처음에 이신을 시켰다가 패하고 나서 다시 왕전을 기용하여 초를 평정하였다.<史記 卷七十三>
♞ 왕절신[王節信] 후한(後漢) 때 자(字)가 절신(節信)인 왕부(王符)가 당시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며 세상을 개탄하는 잠부론(潛夫論) 30여 편을 지었다.
♞ 왕정[王程] 왕사(王事)를 위해 분주하는 여정(旅程)을 말한다.
♞ 왕정[王鄭] 왕흡(王洽)과 정건(鄭虔). 모두 당(唐) 나라 사람으로 그림과 시문(詩文)에 이름이 높았다.
♞ 왕존애관[王尊愛官] 한(漢) 나라 왕양(王陽)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험준하기로 유명한 구절판(九折阪)을 넘어다니게 되자 부모님이 주신 몸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직하고 돌아왔는데, 그 뒤에 왕존이 자사가 되어 구절판을 넘을 때에는 마부에게 빨리 말을 몰라고 다그치며 “왕양은 효자이지만 왕존은 충신이다.[王陽爲孝子 王尊爲忠臣]”라고 했던 고사가 있다. <漢書 王尊傳>
♞ 왕존질어[王尊叱馭] 한(漢) 나라 때 왕양(王陽)이 일찍이 익주 자사(益州剌史)가 되어 관할 지방을 순행하다가 공래산(邛郲山) 구절판(九折阪)에 이르렀을 때 탄식하며 말하기를 “선인(先人)의 유체(遺體)를 받들고 어떻게 이런 험한 곳을 자주 다닐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는데, 뒤에 왕준(王尊)이 익주 자사가 되어서는 이 곳을 지나면서 아전에게 묻기를 “이 곳이 바로 왕양이 두려워하던 길이 아니냐?”라고 하고는, 그의 마부에게 말을 몰도록 질책하면서 말하기를 “왕양은 효자가 되었으니, 왕준은 충신이 될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