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랑가추풍[劉郞歌秋風] 유랑은 한 무제(漢武帝)를 가리킨다. 무제는 신선(神仙)을 좋아하여 봉선(封禪)을 자주 하였는데, 한번은 하동(河東)에 가서 후토(后土)에 제사한 다음 분하(汾河)를 건너다가 중류에서 술자리를 베풀고는 즐거워하여 추풍사(秋風辭)를 지었는데, 여기에 “저 가인을 그리워하여 잊지 못한다. 누선을 띄우고 분하를 건너면서 중류를 가로지르니 흰 물결 일렁이누나. 퉁소와 북 울리며 뱃노래 부른다.[懷佳人兮人能忘 汎樓船兮濟汾河 橫中流兮楊素波 簫鼓鳴兮發揚歌]”는 말이 있는바 가인이란 곧 신선을 가리킨 것이다. <漢書 武帝本紀>
♞ 유랑거후재[劉郞去後栽] 유랑은 유우석(劉禹錫)을 가리킨다. 당(唐) 나라 덕종(德宗) 말엽에 유우석이 상서 둔전원외랑(尙書屯田員外郞)으로 있으면서 탄핵을 받아 낭주사마(朗州司馬)로 좌천했다가 헌종(憲宗) 10년에 다시 서울로 불려들어와서 지은 ‘현도관에 놀면서 꽃 구경하는 사람을 읊은 시[遊玄都觀看花君子詩]’에 “자맥에 홍진을 떨치고 오니, 사람마다 꽃 보고 돌아온다 하네. 현도관의 천 그루 복숭아는 다 유랑이 떠난 후에 심었네.[紫陌紅塵拂而來 無人不道看花回 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라 하였는데, 옛날에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로 보게 됨을 읊은 시이다. <舊唐書下 卷一百六十 劉禹錫傳>
♞ 유랑거후화[劉郞去後花] 현도관은 당(唐) 나라 때 장안(長安)에 있던 도관(道觀)의 이름이고, 유랑(劉郞)은 바로 당 나라 때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을 이른다. 현도관에는 본디 아무런 꽃도 없었는데, 유우석이 낭주 사마(朗州司馬)로 폄척되었다가 10년 만에 풀려나 돌아와 보니, 그 동안에 어느 도사(道士)가 현도관에 선도(仙桃)를 가득 심어 놓아서 꽃의 화려하기가 마치 붉은 놀[紅霞]과 같았으므로, 유우석이 꽃구경한 제군(諸君)에게 준 시에 “장안 거리 붉은 먼지가 얼굴을 스치는데, 사람마다 꽃구경하고 돌아온다 하누나. 현도관 안의 복숭아나무 일천 그루는, 모두가 유량이 떠난 뒤에 심은 거라오.[紫陌紅塵拂來 無人不道看花回 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