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랑번행[劉郞番行] 유랑은 후한(後漢) 때의 유신(劉晨)을 가리킨다. 명제(明帝) 때 유신이 완조(阮肇)와 함께 천태산(天台山) 도원동(桃源洞)으로 약을 캐러가서 선녀를 만나 함께 살다가 세상에 한번 나온 뒤에 다시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한다. <幽明錄>
♞ 유랑삼구[庾郞三韭] 남조(南朝) 제(齊) 나라 유고지(庾杲之)의 밥상에는 늘 부추로 만든 반찬 세 가지[三韭]만이 놓였는데, 삼구(三韭)가 삼구(三九)와 음이 같은 것에 착안하여 “유랑이 어디 청빈하던가, 어채 반찬이 이십칠이나 되는걸.[誰謂庾郞貧 食鮭常有二十七種]”이라고 놀린 고사가 있다. <南齊書 庾杲之傳>
♞ 유랑주측반[劉郞舟側畔] 당 나라 유우석(劉禹錫)의 시(詩)에 “파선된 배 옆에 일천 돛대가 지나가고, 늙은 나무 앞에 일만 나무 붐비네.[沉舟側畔千帆過 老樹前頭萬木春]”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불행한 사람의 옆에 득의(得意)한 사람들이 지나간다는 말이다.
♞ 유랑현도공독래[劉郞玄都空獨來] 유랑은 곧 유우석(劉禹錫)을 말한다. 당서(唐書) 유우석전(劉禹錫傳)에 “내가 둔전 원외랑(屯田員外郞)으로 있을 적에는 현도관(玄都觀)에 꽃이 없었는데, 낭주 사마(郞州司馬)로 좌천된 지 10년 만에 경사(京師)로 돌아와서 들으니, 도사(道士)가 현도관 주위에 선도(仙桃)를 잔뜩 심었다고 했다. 그 후 다시 지방관으로 좌천되어 있다가 14년이 지나서 다시 현도관을 찾아가 보니, 선도는 한 그루도 없고 아욱과 귀리만 봄바람에 흔들리더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