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흠[劉歆] 유흠은 한(漢) 나라의 대학자 유향(劉向)의 아들로, 부친의 업을 계승하여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고문(古文)을 혹독히 좋아하여 금문(今文)의 학자들과 심한 갈등을 빚은 나머지 하내태수(河內太守)를 자청하여 몸을 피하기도 하였다.
♞ 유희[庾羲] 진(晉) 나라 사람으로 자는 의숙(義叔). 목제(穆帝)에게 풍간(諷諫)하는 시를 지어 올려 명망이 높았다.
♞ 육가[陸賈] 송(宋)의 시인 육유(陸游)와 당대(唐代)의 시인 가도(賈島)의 합칭이다.
♞ 육가[陸家] 진(晉) 나라 때 육기(陸機) 형제가 문장으로 유명하였는데, 변망론(辯亡論) 문부(文賦)등 명작을 지었으며, 아우의 ‘구름’이라는 글도 유명하였으므로, 세칭 이륙(二陸)이라 하였다.
♞ 육가[陸賈] 한(漢) 나라 사람. 한(漢) 나라 때 남월(南越)의 왕 조타(趙佗)가 스스로 왕이 되어 무제(武帝)라고 칭하였는데, 문제(文帝)가 육가를 사신으로 보내어 타이르자 황제의 호칭을 버리고 신(臣)이라 칭하였다. <史記 卷97 陸賈列傳>
♞ 육가[陸賈] 진평(陳平)이 육가의 충고로, 음모를 꾸미던 여씨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육가는 원래 초인(楚人)으로서 고조(高祖)를 도와 천하가 대충 안정된 뒤에도 남월왕(南越王)을 달래어 한(漢)으로 귀순하게 만들고 또 무력 통치를 좋아하는 고조를 위하여, 진(秦)이 천하를 잃고 한이 천하를 얻게 된 이유와 고금의 치란(治亂)에 관한 것들을 12편(篇)으로 엮어 신어(新語)를 저술하여 고조가 천하 다스리는 데 참고가 되게 하는 등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었다. 고조가 죽고 혜제(惠帝)가 위에 오르자 여태후(呂太后)가 용사하기 시작하여 여씨 세력이 점점 커 갔으므로 우승상 진평(陳平)은 그를 걱정하였으나 역부족을 느끼고 화가 자기에게 미칠까 두려워 항상 깊이 들어앉아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때 육가가 나타나서 진평에게, 태위(太尉) 주발(周勃)과 깊이 결탁하여 장상(將相)이 서로 한 덩어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충고를 하였다. 이에 진평은 그 충고를 받아들여 주발과 사이를 돈독히 하고 결국 여씨(呂氏)일가를 주륙하는 데 성공하였다.<史記 卷九十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