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경절[子卿節] 자경은 한 나라 소무(蘇武)의 자이다. 소무가 한(漢) 나라 무제(武帝)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있다가 흉노(匈奴)에 사신으로 갔는데, 흉노의 선우(單于)가 갖은 협박을 하면서 항복하기를 강요하였다. 그런데도 굴하지 않다가 큰 구덩이 속에 갇혀서 눈을 먹고 가죽을 씹으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다시 북해(北海)로 옮겨져서 양을 치며 지냈는데, 그때에도 한 나라의 절(節)을 그대로 잡고 있었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19년 동안 머물러 있다가 소제(昭帝) 때 흉노와 화친하게 되어 비로소 한 나라로 돌아왔다. <漢書 卷54 蘇武傳>
♞ 자경청전[子敬靑氈] 자경은 진(晉) 나라 때의 왕헌지(王獻之)를 이른다. 자경은 그의 자이다. 왕헌지가 어느 날 밤 재중(齋中)에 누웠을 때 도둑이 들어 모든 물건을 다 훔쳐가므로, 헌지가 도둑에게 말하기를 “청색 모전(毛氈)은 우리 집의 세전지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거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八十>
♞ 자고[子羔] 공자의 제자 고시(高柴)의 자다. 춘추시대 위나라의 대부로 자로와 함께 위나라에서 벼슬 했다. 기원전 521년에 태어났으나 죽은 해는 알 수 없다. 공자보다 30세 연하이다. 신장은 5척에 체 못 미쳤으며 그 외모는 못났다. 공자는 그를 보고 사람을 겉모습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실례라고 하면서 우직하다고 평했다.
♞ 자고[紫詁] 금랑(錦囊)에 담아 자니(紫泥)로 입구를 봉한 뒤 인장(印章)을 찍어서 반포하는 임금의 조서(詔書)를 말한다.
♞ 자고[紫誥] 임금의 조서는 비단주머니에 담고 풍화석(風化石)의 일종인 적석지(赤石脂)로 그 입구를 봉한 뒤에 그 위에다가 인장을 누르는 격식에서 나온 말로, 조서를 뜻한다.
♞ 자고[鷓鴣] 만당(晩唐)의 시인 정곡(鄭谷)의 자고(鷓鴣)를 읊은 시가 일세에 회자하여 마침내 자고의 별칭이 되었으므로 뒷 사람이 정씨를 만나면 으레 자고라 하였다.
♞ 자고[鷓鴣] 우는 소리가 ‘행부득야가가(行不得也哥哥)’ 처럼 들린다고 하여, 먼 길 떠날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할 때 흔히 시문 속에 등장시켰다.
♞ 자고[子羔] 춘추 시대 위(衛) 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인 고시(高柴)를 이름. 자고는 그의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