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세[張安世] ~ 장안십일니[長安十日泥] ~ 장안추우니막막[長安秋雨泥漠漠]
 글쓴이 : 하늘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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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세[張安世] 장탕의 아들로 자는 자유(子孺). 장탕의 죽음을 애석히 여긴 무제에 의해 발탁되어 랑()이 되었다가 상서(尙書)의 자리에 올라 힘을 다하여 공무를 수행했다. 그 공으로 상서령(尙書令)이 되고 다시 광록훈(光祿勛)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제(昭帝)가 제위에 오르자 우장군(右將軍)과 광록훈(光祿勛)을 역임하며13년 동안 황제를 보좌했다. 원봉 6년 기원전 74, 부평후(富平侯)에 봉해지고 3천 호의 식읍을 받았다. 소제가 죽자 그와 곽광(霍光)은 황음무도한 소제의 동생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폐하고 선제(宣帝)를 세웠다. 그 공으로 장안세는 16백호의 식읍을 더 받았다. 지절 2년 기원전 68년 곽광이 죽자 그는 대사마(大司馬)와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되고 상서(尙書)의 일을 통괄했다. 다음 해에 위장군(衛將軍) 임명되어 장락궁 및 미앙궁, 성문의 경비병과 북군의 총수가 되었다. 선제의 깊은 신임을 받아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 영향력을 발휘했다. 항상 몸가짐을 조심하고 매사에 주도면밀하여 새로운 조령(詔令)이 내려질 때마다 그는 일부러 놀라고 두려운 모습을 하고 부하관원들을 시켜 승상부에 보내 자세한 내막을 알아오라고 시켰기 때문에 공경대신들은 그가 이미 조령을 논의할 때 깊이 참여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직위는 공후(公侯)에 식읍은 만호에 달했지만 몸에는 항상 검은 물을 들인 옷을 입었으며 부인은 베틀을 몸소 돌렸고 7백 명에 달하는 가동들도 모두 직공등이었지만 또한 그의 부는 곽광을 능가했다. 원강(元康) 4년 기원전 62년에 죽었다.

장안십일니[長安十日泥] 한번 비가 오기만 하면 열흘 동안 진흙탕이 되는 서울 거리를 말한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長安秋雨十日泥 我曹鞴馬聽晨雞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14 狂歌行贈四兄>

장안와설인[長安臥雪人] 후한(後漢)의 원안(袁安)을 말한다. 원안이 곤궁했을 때 낙양(洛陽)에 큰 눈이 내려 한 길이나 쌓였었는데, 남들은 다 허기진 창자를 메우기 위하여 구걸행각을 하였으나 원안은 홀로 그 눈 속에 반듯이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後漢書 卷七十五>

장안총죽[長安叢竹] () 나라 백거이(白居易)가 처음 벼슬길에 올라 장안(長安)에 우거할 때 그 집에 있는 대숲이 돌보는 사람이 없어 황폐한 채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잘 손질한 다음 양죽기(養竹記)란 글을 지어 대나무를 현인에 비유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養竹記>

장안추우니막막[長安秋雨泥漠漠] 두보(杜甫)의 시에 장안의 가을비에 열흘이나 질퍽질퍽, 새벽 닭 울 때에 우리들 말안장 얹었지요.[長安秋雨十日泥 我曹鞴馬聽晨雞]”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14 狂歌行贈四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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