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양왕[莊襄王] ~ 장어민[藏於民] ~ 장열[張說]
 글쓴이 : 하늘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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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양왕[莊襄王] 기원전278에 태어나서 전247에 죽은 진나라의 왕이다. 영성(嬴姓)에 처음 이름은 이인(異人)이엇으나 후에 자초(子楚)로 바꾸었다. 효문왕의 서자로 소양왕(昭襄王) 때 조나라에 인질로 갔다가 대상인 여불위를 알게 되었다. 이인을 보고 투자하면 큰 이윽을 얻울 수 있겠다!’ 기화가거(奇貨可居)’라고 생각한 여불위가 진나라에 들어가 효문왕의 부인 화양부인에게 유세했다. 소생이 없었던 화양부인은 소양왕에게 청하여 이인을 불러들여 자신의 아들로 삼아 이름을 자초로 바꾸었다. 이윽고 소양왕이 죽고 효문왕이 진왕의 자리에 오르자 자초는 태자가 되었다. 그러나 효문왕이 상중에 죽자 곧바로 진왕의 자리에 올랐다. 장양왕이 재위에 오른 해는 기원전 249년이다. 장양왕은 여불위를 상국으로 삼고 문신후(文信侯)에 봉하고 10만 호의 낙양을 식읍으로 주었다. 대외적으로는 계속 동진정책을 취하여 몽오(蒙驁)를 시켜 한나라의 성고(成皐)와 형양(滎陽)을 점령하여 그곳에 삼천군(三川郡)을 설치했다. 삼천은 이수(伊水), 낙수(洛水), 하수(河水) 등의 하천을 말한다. 다시 조나라의 상당(上黨)의 여러 성과 유차(楡次) 일대의 37개 성을 점령하여 태원군(太原郡)을 설치했다. 계속해서 군사를 보내 위()나라를 침공했으나 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에 의해 결성된 5국 연합군에 의해 하외(河外)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재위 3년 만에 죽고 시호는 장양(莊襄)이다. 장지는 채양(茝陽)이다. 지금의 지양(芷陽)으로 섬서성 임동(臨潼) 서다.

장양헌부옹[長楊獻賦翁] 한나라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장양부(長楊賦)라는 부를 지었다.

장어민[藏於民] 인정(仁政)을 하는 임금은 재물을 국고(國庫)에 저장하여 두는 것보다 백성이 잘 사는 그것이 곧 나라의 재물을 백성에게 저장하여 둠이 된다는 것이다.

장열[張說] 당 현종(唐玄宗) 때의 문장가이며 정치가.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고 연국공(燕國公)이 봉해졌다. 당시 허국공(許國公) 소정(蘇頲)과 연허대수필(燕許大手筆)이라 칭해졌으며, 조정의 큰 편찬 사업이 거의 그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저서에는 장열공집(張說公集)이 있다. <·舊唐書 張說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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