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한부인[呼韓婦人] 한(漢)나라 궁녀 왕소군(王昭君)이 흉노(匈奴)의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가면서 말 위에서 비파를 타서 애절한 심정을 하소연하였다.
♞ 호함[頀咸] 호는 탕(湯)의 음악 대호(大頀)이고, 함은 요(堯)의 음악 대함(大咸)인데, 전아한 고대의 음악을 뜻한다.
♞ 호해[胡亥] 진시황의 막내아들로 진시황이 순행 도중에 수레 안에서 죽자 첫째 아들 부소(扶蘇)를 후계로 삼는다는 유언장을 조고(趙高) 및 이사(李斯)와 모의하여 변조하여 황제의 뒤를 이었다. 후에 조고에 의해 살해되고 진나라는 망했다.
♞ 호해[湖海] 호해(湖海)는 호남(湖南)과 해서(海西)이다. 강호와 같은 말이다.
♞ 호해[壺孩] 호해는 단지에서 나온 아이라는 뜻으로, 궤속에서 나온 신라의 탈해왕(脫解王)과 알지(閼智)에 얽힌 설화인 듯하다.
♞ 호해[湖海] 호해의 기백이란 광대하고 당당한 호기(豪氣)를 말한다.
♞ 호해고루[湖海高樓] 삼국(三國) 시대 위(魏) 나라 진등(陳登)이 당시 위명(威名)이 있었고 또한 오만하기로도 이름이 높았는데, 그가 죽은 뒤, 허사(許汜)가 유비(劉備)와 함께 천하 사람의 인품을 논할 적에 허사가 “진등은 호기 높은 호해(湖海)의 선비였다. 옛날 내가 난리를 만나 하비(下)에 들러 진등을 찾아보았는데, 그는 나를 손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랫동안 얘기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은 큰 와상에 올라가 눕고 나는 아래 작은 와상에 눕게 하더라.”고 말하니, 유비가 말하기를 “그대는 국사(國士)의 명망을 지니고서도 우국 망가(憂國忘家)를 하지 않음으로써 진등이 그대를 싫어했던 것이다. 그러니 무슨 연유로 그대와 얘기를 나누었겠는가. 나같았으면 나는 백척루(百尺樓)에 올라가 눕고 그대는 맨 땅에 눕게 했을 것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七>
♞ 호해기[湖海氣] 호협한 기개를 말한다. 후한(後漢) 말 국사(國士)의 칭호를 받았던 허사(許汜)가 진등(陳登)을 찾아가서 소인배나 발언할 말을 하다가 진등에게 무시당해 형편없는 잠자리에서 자고 나와서는 진등에 대해 “호해지사(湖海之士)라서 아직도 호기(豪氣)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불평한 고사가 있다. <三國志 魏志 陳登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