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씨벽[和氏璧] 초(楚) 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초(楚) 나라 여왕(厲王)에게 올리니, 여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다. 옥공이 돌이라고 하니 임금이 속였다고 하여 좌족(左足)을 베어 버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또 박옥을 올리니, 무왕이 옥공을 시켜 감정하게 하였는데 또 돌이라고 하매 그 우족(右足)을 베어버렸다. 그후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박옥을 안고 형산 아래에서 통곡하니, 문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연유를 물었다. 변화가 말하기를 “보옥을 돌이라 하고 정직한 선비를 간사한 자라고 하니, 그것이 슬퍼서 그런다.”라고 하였다. 왕이 마침내 옥공을 시켜 박옥을 쪼개보니 과연 진귀한 보옥이 나오므로 드디어 화씨벽(和氏璧)이라 이름하였다. <韓非子 和氏>
♞ 화씨벽[和氏璧] 초나라 변화(卞和)가 초왕에 바친 벽옥으로 후에 조왕의 소유가 되자 진나라의 소양왕이 성 15개와 바꾸자했다. 그후로 15개 성읍의 가치가 있는 보물이라고 해서 연성지보(連城之寶)라고도 부른다.
♞ 화씨성[和氏城] 전국 시대 조(趙) 나라가 화씨벽(和氏璧)이란 보옥을 얻었는데, 진(秦) 나라가 15개의 성과 바꾸자고 했다.
♞ 화씨양[華氏羊] 춘추 때에 송(宋) 나라 화원(華元)이 양(羊)을 잡아 여러 사람을 대접하였는데, 그 어자(御者) 양침(羊斟)은 얻어먹지 못하여 불평을 품었다가, 그 뒤에 송 나라와 정(鄭) 나라가 싸울 때에 양침이 “전일에 양을 잡아 대접할 때는 당신의 마음대로 하였지마는, 오늘 전쟁에 수레를 모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고는 화원의 탄 수레를 몰고 정 나라 군중으로 달려들어갔으므로 화원이 패하였다.
♞ 화씨지란[華氏之亂] 기원전 532년 송원공(宋元公) 10년에 일어난 송정변으로 원공이 당시 송나라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화씨들을 몰아내려고 하자 화해(華亥)와 화녕(華寧) 등이 난을 일으켰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초나라로 망명했다.
♞ 화씨지박[和氏之璞] 화씨는 변화(卞和)인데 춘추 시대 초(楚) 나라 사람이다. 변화가 옥덩이 하나를 발견하여 전후로 초 나라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모두 기만의 죄로 몰려 양쪽의 발꿈치가 잘렸다. 문왕(文王) 때에 이르러 변화가 또 옥덩이를 안고 형산(荊山) 밑에서 통곡하자 문왕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옥덩이를 쪼개어 가공한 결과 보옥(寶玉)을 얻었는데 이를 화씨벽(和氏璧)이라고 일컬었다. <韓非子 和氏>
♞ 화씨지벽[和氏之璧] 천하에서 가장 이름난 옥. 초(楚) 나라의 변화(卞和)가 형산(刑山)에서 얻은 유명한 구슬. 조(趙)에서 그것을 얻었으며, 진(秦) 나라에 가져갔다가 오롯이 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