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移文] 이문(移文)는 관문서(官文書)의 일종. 남제(南齊) 공치규(孔穉圭)가 지은 북산이문(北山移文)에 “종산의 신령과 초당의 신령이 역로를 달려 산정에 이문을 새겼다[鍾山之英草堂之靈馳煙驛路勒移山庭].”라는 말이 있다. 내용은 주옹(周顒)이 북산에 함께 은거하다가 뒤에 약속을 어기고 조명(詔命)에 응하여 해염령(海鹽令)이 되었는데 나중에 다시 돌아와 숨으려 하므로 공치규는 산령의 뜻을 빌어 이문(移文)하여 못 오게 하였다.
♞이문[移文] 이문(移文)은 여러 사람이 돌려보도록 쓴 글을 말한다. 남제(南齊) 때 사람 공치규(孔稚圭)가 지은 북산이문(北山移文)이 있는데, 고사(高士) 주언륜(周彦倫)이 북산에 은거하여 명망이 있었는데, 후에 세상에 나가 해염현령(海鹽縣令)이 되었다가 다시 벼슬을 그만두고 북산으로 들어가려 하자, 공치규가 산신(山神)의 뜻을 가탁(假託)하여 거절한 내용이다. <古文眞寶 北山移文>
♞이문[夷門] 전국시대 위(魏) 나라 대량(大梁) 땅의 성곽 동문으로, 당시의 고사(高士)후영(侯贏)이 은거했던 곳이다. 곧 대은(大隱)이 숨어 있는 저자를 뜻한다.
♞이문원[摛文院] 규장각(奎章閣)의 이칭. 원래는 어진(御眞)·어제(御製)·어필(御筆)·선원보첩(璿源譜牒)내부 서적(內府書籍)등 주로 왕실의 유물과 전적들을 보관 관리하는 일을 맡은 관청으로 창덕궁에 있었는데, 정조 5년(1781)에 규장각 관원들의 숙직소로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이어 규장각의 별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