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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이라는 것이...

 

- 漢書(한서) : 列傳(열전) -

  

조착은 서한 초엽의 영천 사람으로서, 유명한 학자였다.

한나라 문제 때, 조착은 태상장고라는 벼슬을 하면서, 복승의 구술(口述)을 근거로 실전된 상서(尙書)를 기록하고 정리하였다. 훗날 그는 태자의 스승을 지내기도 하였는데, 사람들은 그의 경전에 대한 심오한 학식 때문에 그를 지혜의 주머니라는 뜻의 ‘지낭(智囊)’이라 불렀다.

태자 유계가 즉위하여 경제가 되자, 조착의 명망도 더욱 높아져 어사대부를 맡게 되었으며, 그의 권력은 문무백관들의 위에 있었다. 그의 건의는 모두 황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없었다.

당시, 각 지역에는 유씨 집안의 자제들이 왕으로 봉하여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점차 조정에 대하여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된 왕국을 이루려고 하였다. 이에, 조착은 황제에게 그들의 땅을 줄이고 중앙의 통치를 강화하여 반란을 막아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이 소식이 퍼지자 각 지역의 왕들은 조착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조착의 부친은 영천에서 경성으로 올라서 조착에게 충고하였다.

“황제와 각 지역의 제왕들은 모두 골육들인데, 네가 어찌 그들의 일을 상관할 수 있겠느냐?”

조착이 대답하였다.

“만약 제가 관여하지 않는다면, 유씨 집안의 천하를 지킬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조착의 아버지는 몹시 화를 내며 말했다.

“너는 유씨 집안을 지킬 줄만 알지, 우리 조씨 집안은 돌보지 않겠다는 것이냐?”

조착의 아버지는 아들을 설득시키지 못한 것을 원망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음독자살하고 말았다.

훗날, 오와 초 등 일곱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경제는 상황을 진정시키지 위하여 조착을 죽였다.

조착은 한나라 왕조에 대하여 충성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생전에 그는 황제에게 30편의 글을 올려 중요한 사항들을 건의하였다. 그는 그 건의한 글 가운데에는 이러한 대목도 있었다.

“장병들이 용맹스럽게 작전에 임하여 후퇴하지 않고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하려면, 마땅히 계급을 올려 주어야 하며, 적들의 성과 진지를 격파할 수 있게 하려면 마땅히 상을 내려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장병들로 하여금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끓는 물과 타는 불 속으로 뛰어 들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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