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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검소가 능사는 아니다
- 한비자 제33편 외저설(좌하)[501]-
맹헌백이 진나라의 재상을 있을 때, 사람 출입이 적었기 때문에 안팎으로 뜰에 잡초가 무성했다. 생활은 검소했고, 찬은 단 한가지였다. 앉을 때도 방석이 한 장이었고, 비단 옷을 입는 일이 없었으며, 말에게도 조를 주는 법이 없었고, 외출할 때는 수레를 타지 않았다. 이와 같은 사실을 숙향이 듣고 묘분황에게 말했다. 묘분황은 이렇게 비난했다. “헌백은 군주에게 받은 녹은 어찌하고 백성들에게 잘 보이려고 영합하는 것인가.” 일설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맹헌백이 최고의 대신이 되었기 때문에 숙향이 축하하러 갔다. 대문이 있는 곳에 수레와 말은 매어 있었으나 먹이를 주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숙향이 말했다. “당신이 두 필의 말과 두 대의 수레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오.” 헌백이 대답했다. “이 나라 백성은 아직도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습니다. 또 백발 노인이 모두 걷고 있기 때문에 수레를 두 대씩이나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숙향이 말했다. “나는 처음에 당신이 상경이 된 것을 축하하러 왔었는데 지금은 당신의 검소한 생활을 축하해야 되겠습니다.” 숙향은 물러나와 묘분황에게 말했다. “나와 함께 헌백의 검소한 생활을 격려해 주기 바라오.” 묘분황이 대답했다. “무엇 때문에 칭찬합니까. 원래 작록이나 깃발이나 문장은 공로의 크고 작은 차이를 표시하고, 현명함과 우매함을 차이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나라 국법에 의하면 상대부는 마차 두 대와 말 두 필, 중대부는 마차 두 대와 말 한 필, 하대부는 마차 한 대와 말 한 필을 주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반드시 군대 업무에 종사하게 될 것입니다. 수레를 갖추어 보병과 전차병을 정비하여 전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일단 국난이 일어나면 비상사태를 처리해야 되며, 평온무사할 때는 국사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맹헌백은 자국의 정치를 혼란하게 하고, 비상사태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며, 검소의 미덕에 의해서 자기 개인의 명예만을 빛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헌백의 검소한 생활이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칭찬을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 韓非子 第33篇 外儲說(左下)[501]- 孟獻伯相魯, 堂下生藿藜, 門外長荊棘, 食不二味, 坐不重席, 無衣帛之妾, 居不粟馬, 出不從車. 叔向聞之, 以告苗賁皇. 賁皇非之曰:「是出主之爵祿以附下也.」 一曰: 晉孟獻伯拜上卿, 叔向往賀, 門有御, 馬不食禾. 向曰:「子無二馬二輿, 何也?」 獻伯曰:「吾觀國人尙有飢色, 是以不秣馬 班白者多徒行, 故不二輿.」 向曰:「吾始賀子之拜卿, 今賀子之儉也.」 向出, 語苗賁皇曰:「助吾賀獻伯之儉也.」 苗子曰:「何賀焉?」 夫爵祿기旂章, 所以異功伐別賢不肖也. 故晉國之法, 上大夫二輿二乘, 中大夫二輿一乘, 下大夫專乘, 此明等級也. 且夫卿必有軍事, 是故循車馬, 比卒乘, 以備戎事. 有難, 則以備不虞 平夷, 則以給朝事. 今亂晉國之政, 乏不虞之備, 以成節, 以絜私名, 獻伯之儉也可與? 又何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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