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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孫子兵法)에 대하여
중국 고대 군사학의 명저로 현존하는 중국 최고(最古)의 병서(兵書)이다. 병법칠서(兵法七書) 중 으뜸으로 꼽히며 흔히 손오병법(孫吳兵法)이라고 하며, 손자(孫子)· 오손자병법(吳孫子兵法)· 손무병법(孫武兵法)등으로도 불린다. 오자(吳子)와 병칭(倂稱)된다. 춘추시대말 오나라의 명장 손무(孫武)가 지었다고 한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손무는 오나라 왕 합려를 섬겼으며, 서쪽으로는 초(楚)나라를 격파하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晉)나라를 위협하여 온 나라 안에서 용맹을 떨쳤고 병법서 13편을 저술했는데, 후일 손자라고 불리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손무의 후손으로 전국시대 제(齊)나라에서 벼슬한 손빈이 손자라고도 한다. 사기(史記)에 손자 13편이라 하였으나 그 편목은 알 수 없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오손자병법(吳孫子兵法) 82편과 제손자(齊孫子) 89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오손자는 손무의 저작이라 하고 제손자는 손빈의 저작이라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손자 13편이 오손자인지 제손자인지는 예로부터 논란이 있어 왔으나, 1972년 산둥성(山東省) 린이현(臨沂縣) 인최산(銀雀山)의 전한시대 묘에서 죽간(竹簡)으로 된 병서가 출토되어 손자에는 〈손자〉와 〈손빈병법〉의 2가지가 있었음이 판명되었다. 중국측의 보고서에 따르면 손자의 죽간 305매(2300여 자), 손빈병법의 죽간 440매(1만 1000자 이상)가 해독되어, 사기와 한서 기록의 정확성을 입증하였고, 손자의 저자 입증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서 예문지에는 오손자병법 82편이라 하여 병서략(兵書略) 첫머리에 기재하고 주(注)에는 도록 9권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13편으로 이것은 당초의 것이 아니고, 삼국시대 위나라의 조조가 82편 중에서 번잡한 것은 삭제하고 정수만을 추려 13편 2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13편의 편명은 계(計)· 작전(作戰)· 모공(謀攻)· 군형(軍形)· 병세(兵勢)· 허실(虛實)· 군쟁(軍爭)· 구변(九變)· 행군(行軍)· 지형(地形)· 구지(九地)· 화공(火攻)· 용간(用間)으로 되어 있으며, 「병(兵)은 국가의 대사(大事), 사생(死生)의 땅, 존망(存亡)의 길」이라는 입장에서 국책의 결정, 장군의 선임을 비롯하여 작전· 전투 전반에 걸쳐 격조 높은 문장으로 간결하게 요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 뜻하는 바는 항상 주동적 위치에서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을 주로 하고, 또 사상적인 뒷받침도 설하고 있어 병서로서는 모순된다 느껴질 만큼 비호전적인 것이 특징이다. 춘추시대 말기의 군사학설 및 전쟁경험을 모두 묶은 작전의 성전(聖典)으로서, 예로부터 많은 무장들에게 존중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경영의 요지와 인사의 성패 등에도 비범한 견해를 보이고 있어 인생문제 전반에 적용되는 지혜의 글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예로부터 많은 무신들이 이를 지침으로 삼았고, 조선시대에는 역관초시(譯官初試)의 교재로 삼기도 하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는 명구가 특히 유명하며, 우세한 병력의 집중, 민첩한 기동작전 등의 수많은 기본원칙은 세계 각국 군사가들의 높은 평판을 얻었다. 조조(曹操)를 포함한 11명이 주를 달았으며, '손자병법'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국에서 많이 인용, 번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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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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