贈峻上人二十首[其九]증준상인20수9 / 준상인에게 주다
- 金時習[김시습] -
楓岳高低十二峯[풍악고저십이봉] 풍악은 높고 낮아 열 두 봉우리
峯頭石角掛枯松[봉두석각괘고송] 꼭대기 뾰족 돌에 걸린 마른 솔
塵紛却是郭郞巧[진분각시곽랑교] 속세의 어지러움 곽랑의 시늉이라
世事盡隨蝴蝶空[세사진수호접공] 세상 일 모두 호접 따라 공이로다
桂子落時殘照薄[계자락시잔조박] 계화 떨어질 때는 남은 볕도 옅더니
楊花飛處晩山濃[양화비처만산농] 버들꽃 나는 곳엔 저녁 산 빛도 짙어
蒲團獨坐香如縷[포단독좌향여루] 포단에 홀로 앉으니 향은 실낱같고
愛聽楓橋半夜鍾[애청풍교반야종] 풍교 깊은 밤의 종소리 듣기 즐겨라
※ 매월당집(梅月堂集)에 실려 있다. 속동문선(續東文選)에는 무제삼수(無題三首) 중 한 수(首)로 소개되어 있다.
❍ 김시습[金時習] 조선 세종(世宗)에서 성종(成宗) 때의 학자이자 문인.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峯), 청한자(淸寒子), 벽산(碧山) 등을 썼다. 법호는 설잠(雪岑)이고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주기론적(主氣論的) 입장에서 불교와 도교를 비판, 흡수하여 자신의 철학을 완성시켰다. 한양의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높았다. 세 살 때 맷돌에 보리를 가는 것을 보고 “비도 안 오는데 천둥소리 울리고, 노란 구름 여기저기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고 시를 읊어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고, 다섯 살 때 궁으로 들어가 세종을 알현하였다. 열다섯 살 때 모친을 잃고 외가에 의탁하였으나 3년 뒤 외숙모마저 세상을 뜨자 다시 상경했을 때는 부친도 중병을 앓고 있었다. 연속되는 가정의 불우 속에서도 결혼을 하고 공부를 하던 중,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을 듣고 읽던 책을 불태워버리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이후 십 년 가까이 전국을 유랑하였다. 여러 차례 세조의 부름을 받고도 응하지 않고 금오산실(金鰲山室)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다. 상경하여 잠시 성동에 살기도 하였으나 다시 서울을 떠나 방랑하다가 충남 부여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세상을 떴다. 일생 절개를 지키며 유불(儒佛)을 포섭한 사상과 뛰어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정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영월에 있는 육신사(六臣祠)에 배향되었다.
❍ 진분[塵紛] 혼잡하고 어수선한 티끌세상. 속세의 어지러움.
❍ 곽랑[郭郞] 옛날 희극 배우의 이름이었는데 그 후에는 어릿광대를 곽랑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어릿광대의 춤추는 것이 틀렸다고 포노인(鮑老人)이 웃었지만, 그 포노인을 등장시켜 춤을 추게 하니, 도리어 곽랑만도 못하였다는 시가 있다.
❍ 곽랑[郭郞] 옛날 역자(役者)의 이름인데, 전(轉)하여 역자로 사용된다. 악부잡록(樂府雜錄)에 “곽랑이란 자가 배우(俳優)들의 흉내를 잘 내므로 극장이 열릴 적마다 으레 배우들의 앞에 선다.”고 하였다.
❍ 호접[蝴蝶]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蝴蝶]가 되어서 펄펄 날아 다녀 보았는데, 그때에는 자기가 그대로 나비로만 생각하였지 장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꿈을 깨어서 사람이 되고 보니, 자기가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으나 실상은 나비가 정말인데 사람이 나비 꿈속에서 잠시 화(化)한 것인지, 그렇다면 세상은 그 나비와는 관계없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마지막에 “언젠가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나풀나풀 잘 날아다니는 나비의 입장에서 스스로 유쾌하고 만족스럽기만 하였을 뿐 자기가 장주인 것은 알지도 못하였는데, 조금 뒤에 잠을 깨고 보니 엄연히 뻣뻣하게 누워 있는 장주라는 인간이었다. 모를 일이다. 장주의 꿈속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의 꿈속에 장주가 된 것인가. 하지만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분명히 구분이 있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물의 변화라고 한다.[昔者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라는 유명한 호접몽(胡蝶夢)의 이야기가 나온다.
❍ 계자[桂子] 금계의 꽃. 계화(桂花). 계화꽃.
❍ 포단[蒲團] 부들로 짜서 만든 둥근 방석으로, 흔히 승려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배례(拜禮)할 때 할 때 사용한다. 참고로 당나라 구양첨(歐陽詹)의 시 영안사조상인방(永安寺照上人房)에 “초석의 부들방석 먼지를 쓸지 않고, 솔밭의 바위에는 사람이 없는 듯.[草席蒲團不掃塵 松間石上似無人]”이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349 永安寺照上人房>
❍ 풍교[楓橋] 중국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한산사(寒山寺) 근처에 있는 다리 이름이다. 당나라 장계(張繼)의 시 풍교야박(楓橋夜泊)에 “달 지고 까마귀 울고 서리는 하늘 가득한데, 강 단풍 고기잡이 불 곁에 시름겨이 조네. 멀리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한밤중 종소리가 나그네 배에 들려오네.[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鐘聲到客船.]”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242> 원래 봉교(封橋)라고 했으나 이 시(詩)가 유명해지면서 풍교(楓橋)라고 고쳤다고 한다. 한산사는 일명 풍교사(楓橋寺)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