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日齊山登高[구일제산등고] 중양절에 제산에 올라
- 杜牧[두목] -
江涵秋影雁初飛[강함추영안초비] 강은 가을빛에 젖고 기러기 떠나는 철
與客攜壺上翠微[여객휴호상취미] 손과 함께 술병 들고 산중턱에 올랐네
塵世難逢開口笑[진세난봉개구소] 복잡한 세상살이 함빡 웃을 일 드무니
菊花須插滿頭歸[국화수삽만두귀] 국화 꺾어 머리에 함빡 꽂고 돌아가세
但將酩酊酬佳節[단장명정수가절] 곤드레 취함으로 명절 치르면 된 것을
不用登臨恨落暉[불용등림한락휘] 지는 해 바라보며 탄식은 왜 하시는가
古往今來只如此[고왕금래지여차] 예나 지금이나 인생살이 다 그런 것을
牛山何必獨霑衣[우산하필독점의] 경공은 왜 우산에서 홀로 옷깃 적셨나
❍ 두목[杜牧] 만당(晩唐)의 문장가이자 시인으로 자(字)는 목지(牧之), 호는 번천(樊川), 경조(京兆) 만년(萬年: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의 사족(士族) 출신이다. 고시(古詩)는 두보(杜甫)와 한유(韓愈)의 영향을 받아 사회와 정치에 관한 내용이 많다. 장편시는 필력이 웅장하고 장법(章法)이 엄정하며 감개가 깊다. 근체시(近體詩)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능하였는데 서정적이며 풍경을 읊은 것이 많고, 격조가 청신(淸新)하고 감정이 완곡하고도 간명하다. 시어의 조탁(彫琢) 못지않게 내용을 중시했다. 병법에도 밝아 손자(孫子)에 주석을 내어 손자십가주(孫子十家註)에 들어 있다.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 당나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용병술을 논한 죄언(罪言)을 지어 황제에게 올린 바 있다. 26세 때 진사에 급제하여, 황주(黃州), 지주(池州), 목주(睦州)에서 자사(刺史)를 지냈고, 사관수찬(史舘修撰)·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중서사인(中書舍人)을 지냈다. 중서성의 별칭이 자미성(紫微省)이었던 까닭에 사람들이 두자미(杜紫微)라고 불렀고, 사훈원외랑(司勛員外郞)을 지내서 두사훈(杜司勛)이라고도 불렀으며, 두보(杜甫)와 구별하기 위해 두보를 대두(大杜) 또는 노두(老杜)라고 하고 두목을 소두(小杜)라고 불렀고, 또 이상은(李商隱)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 하여 소이두(小李杜)라고도 불렀는데 이백과 두보의 병칭인 이두(李杜)와 구별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안 남쪽 번천(樊川)에 있는 별장에서 지내게 된 만년에는 두번천(杜樊川)으로 불렸다. 두목은 당조(唐朝)에서 이름이 높은 경조두씨(京兆杜氏)로 서진(西晉)의 군사가인 두예(杜預)의 16세손이다. 두목과 두보는 같은 두예의 후예였지만 그 지파가 달랐는데, 두보는 두예의 아들 두탐(杜耽)의 후예였고, 두목은 두예의 다른 아들 두윤(杜尹)의 후예였다. 저작으로 번천문집(樊川文集) 20권이 있다.
❍ 구일[九日] 구월 구일 중양절(重陽節)을 이른다.
❍ 제산[齊山] 지금의 중국 안휘성(安徽省) 지주시(池州市) 귀지구(貴池區) 동남(東南) 쪽에 있다.
❍ 취미[翠微] 제산(齊山) 위에 있는 취미정(翠微亭)을 이른다.
❍ 취미[翠微] 산의 중턱. 산의 중허리. 먼 산에 엷게 낀 푸른 빛깔의 기운. 산기운이 푸르러서 아롱아롱하게 보이는 빛.
❍ 진세[塵世] 티끌세상. 정신에 고통을 주는 복잡하고 어수선한 세상.
❍ 명정[酩酊] 만취상태. 정신(精神)을 차리지 못할 정도(程度)로 술에 몹시 취(醉)함. 곤드레만드레 취(醉)함.
❍ 등림[登臨] 높은 곳에 오름.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봄. 등산(登山) 임수(臨水). 산에 오르기도 하고 물에 가기도 함. 높은 곳에 올라 번잡한 근심을 씻고 정신과 기운을 기름.
❍ 낙휘[落暉] 낙일(落日), 지는 해. 석양. 다 져가는 저녁 햇발.
❍ 고왕금래[古往今來] 예로부터 지금까지
❍ 우산루[牛山淚] 우산(牛山)은 현 산동성(山東省) 임치(臨淄)에 있는 산. 춘추 시대 제 경공(齊景公)이 일찍이 우산(牛山)에서 노닐다가 북쪽으로 제나라의 국성(國城)을 내려다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강물이 질펀히 흐르는 이 고장을 버리고 어떻게 죽는단 말인가[若何滂滂去此而死乎]” 하자, 종신(從臣)인 애공(艾孔)과 양구거(梁丘據)는 모두 따라서 우는데 안자(晏子)만 홀로 곁에서 웃고 있으므로, 경공이 눈물을 닦고 안자를 돌아보고 이르기를 “과인이 오늘 놀다가 슬퍼서 눈물을 흘리자, 애공과 양구거는 다 과인을 따라서 눈물을 흘리는데, 그대만 홀로 웃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寡人今日遊悲 孔與據皆從寡人而涕泣 子之獨笑 何也]”라고 물었다. 안자가 대답하기를 “가령 현자로 하여금 항상 지키게 한다면 태공, 환공이 장차 항상 지키게 될 것이요, 용맹한 이로 하여금 항상 지키게 한다면 장공, 영공이 장차 항상 지키게 될 것이니, 이 두어 명의 군주가 항상 지키기로 든다면 우리 임금님께서 어떻게 이 자리를 얻어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이것이 신이 홀로 웃게 된 까닭입니다[使賢者常守之 則太公桓公將常守之矣 使勇者常守之 則莊公靈公將常守之矣 數君者將守之 則吾君安得此位而立焉……此臣之所以獨竊笑也]”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晏子春秋 內篇 諫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