憶弟二首[其二]억제2수2 / 아우 생각
- 杜甫[두보] -
且喜河南定[차희하남정] 무엇보다 하남이 평정된 게 기쁘니
不問鄴城圍[불문업성위] 업성이 포위된 일일랑 묻지를 말자
百戰今誰在[백전금수재] 수많은 전쟁에 이제 누가 남았는가
三年望汝歸[삼년망여귀] 네가 돌아오길 삼 년을 기다리는데
故園花自發[고원화자발] 고향 동산에는 꽃들 절로 피어나고
春日鳥還飛[춘일조환비] 봄날의 새들도 다시 돌아와 날건만
斷絶人煙久[단절인연구] 인가의 밥짓는 연기 끊긴지 오래고
東西消息稀[동서소식희] 동쪽 서쪽 사이에 소식이 드물구나
<憶弟二首二억제2수2 / 동생을 생각하며 / 杜甫두보>
❍ 두보[杜甫]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두릉야로(杜陵野老), 두릉포의(杜陵布衣) 등이 있다. 양양(襄陽) 지방 출신으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40대인 천보(天寶) 14년(755년)에야 비로소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당시 장안에서 반군에게 잡혔다가 탈출, 숙종(肅宗)의 진영에 합류하여 좌습유(左拾遺)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지낸 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두습유(杜拾遺), 두공부(杜工部) 등으로 불렀고, 또 장안성 밖 소릉(少陵)의 초당(草堂)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두소릉(杜少陵), 두초당(杜草堂)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함께 이두(李杜)로 불렸는데, 두목(杜牧)과 이상은(李商隱)의 합칭인 소이두(小李杜)와 구별하기 위해 대이두(大李杜)라고도 부른다. 문학을 발판 삼아 벼슬로 나아가려던 그의 꿈이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짧은 한때를 빼고는 평생을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중국의 서북 지역을 유랑하다가 결국 병사했다. 벼슬살이와 달리 문학, 특히 시에서 이룬 성취가 대단하였다. 남긴 시가 1500여 수에 달하며 작품집으로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그 자신은 시성(詩聖)으로, 또 그의 시는 시사(詩史)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 차희[且喜] 무엇보다도 기쁜 일은.
❍ 평정[平定] 싸움이나 난리를 큰 어려움 없이 조용하게 진정시킴. 적을 쳐서 자기에게 예속되게 함. 난리(亂離)를 평온(平穩)하게 진정(鎭靜)시킴.
❍ 불문[不問] 어떤 사실 따위를 분명하게 묻지 않고 덮어둠. 캐묻지 아니함. 차이(差異)를 가리지 않음. 물어 밝히지 않는 것. 묻지 않다. 따지지 않다. 문제로 삼지 않다.
❍ 고원[故園] 고향(故鄕). 전(前)에 살던 곳.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 옛날에 만들어진 뜰. 옛집에 있던 정원. 낙빈왕(駱賓王)의 시 만게전가(晩憩田家)에서 “찬물 가에 피어있는 국화가 있어, 그것 하나 고향에서 피던 꽃을 닮았네.[唯有寒潭菊 獨似故園花]”라고 하였고, 관휴(貫休)의 시 회상봉고인(淮上逢故人)에 “난리 통에 고향에서 헤어진 뒤로, 십 년 만에 비로소 자넬 만났네.[故園離亂後 十載始逢君]”라고 하였다.
❍ 자발[自發] 자기의 의지대로 스스로 나아가 행동함.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함. 스스로 발동(發動)함. 남이 시키거나 요청하지 아니하였는데도 자기 스스로 나아가 행함. 자동적으로 발사되거나 발동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