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懷四首[감회4수] 연경으로 가면서
- 李齊賢[이제현] -
旅枕鷄號夢易廻[여침계호몽역회] 나그네 잠 닭 울음에 꿈이 뒤섞여
征鞍欲拂思悠哉[정안욕불사유재] 말에 앉아 떨치려 해도 생각이 아득하네
霜風淅瀝貂裘弊[상풍석력초구폐] 서릿바람에 서걱서걱 갖옷은 해지고
星月闌干畵角哀[성월난간화각애] 별빛 달빛 줄줄이 뿔피리 소리 구슬퍼
淸渭却思浮葉去[청위각사부엽거] 맑은 위수에 배 띄울 생각은 말아야지
玄都非爲看花來[현도비위간화래] 현도관에 꽃구경하러 온 것 아니니
孟嘗賓客皆珠履[맹상빈객개주리] 맹상군의 식객 모두 구슬신 신었다지만
豈必三千摠俊才[기필삼천총준재] 삼천 명 모두가 다 뛰어난 인재였으랴
枕肱茅店夜三更[침굉모점야삼경] 띳집 여관에 팔 베고 누우니 삼경인데
矯首金臺路幾程[교수금대로기정] 머리 들어 금대 바라보니 갈 길 얼마인가
苦節頗同彈鋏客[고절파동탄협객] 괴로이 지킨 절개 탄협객과 비슷하건만
芳年已過棄繻生[방연이과기수생] 나이는 이미 기유생보다 더 들어버렸네
窮通有命悲親老[궁통유명비친노] 궁하고 통함 운명이나 노부모가 애처롭고
緩急非才愧主明[완급비재괴주명] 완급조절 재주 없어 어진 임금께 부끄럽네
畢竟行藏誰與問[필경행장수여문] 결국에 나의 몸 둘 바를 누구에게 물으랴
滿窓霜月獨鍾情[만창상월독종정] 창에 가득한 서릿달만 이 가슴을 울리네
半世雕虫恥壯夫[반세조충치장부] 반평생의 글장난 장부로서 부끄럽고
中年跨馬倦征途[중년과마권정도] 중년에 말을 타는 먼 길에 지쳤는데
杯盤草草燈花落[배반초초등화락] 단출한 술상 위에 등잔불똥 떨어지고
關塞迢迢曉月孤[관새초초효월고] 아득한 국경요새 새벽달이 외로워라
華表未歸千載鶴[화표미귀천재학] 화표에는 천년동안 학이 돌아오지 않고
上林誰借一枝烏[상림수차일지오] 상림원 나뭇가지 누가 까마귀에게 줄까
有錢徑買澆腸酒[유전경매요장주] 돈 있으면 곧바로 술을 사서 마시고
莫使詩班入鬢鬚[막사시반입빈수] 시 짓느라 수염 희끗해지게 아니 하리
長卿去蜀曾題柱[장경거촉증제주] 장경은 촉 떠날 때 기둥에 글을 썼고
鄒子遊梁得曳裾[추자유양득예거] 추자는 양에 머물며 옷자락을 끌었나니
奔走無功合投劾[분주무공합투핵] 분주해도 공 없으면 응당 물러나야지
交遊似夢惜離居[교유사몽석이거] 사귀던 일 꿈 같아 헤어짐이 아쉽지만
未拚蓑笠盟鷗鳥[미변사립맹구조] 사립 털기도 전에 갈매기와 놀자하고
已分圖書養蠹魚[이분도서양두어] 책은 이미 좀이 먹게 나누어 주었네
一望鄕關時自笑[일망향관시자소] 고향산천 바라보매 절로 웃음 나오니
百年天地亦蘧廬[백년천지역거려] 한평생 세상살이 그 또한 여관살이
❍ 이제현[李齊賢] 고려 후기의 학자, 정치가, 문인.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지공(之公). 자(字)는 중사(仲思). 호(號)는 익재(益齋), 역옹(櫟翁).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고려 건국 초의 삼한공신(三韓功臣) 이금서(李金書)의 후예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성숙했고 글을 짓는 데 있어서도 비범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충렬왕(忠烈王) 27년(1301년) 성균시(成均試)에 1등으로 합격하고 이어서 과거에 합격하였다. 그해에 당시 대학자이자 권세가였던 권보(權溥)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충숙왕(忠肅王) 1년(1314년) 상왕(上王)인 충선왕(忠宣王)의 부름을 받아 원(元)나라의 수도 연경(燕京)으로 가서 만권당(萬卷堂)에 머무르며 조맹부(趙孟頫), 원명선(元明善), 장양호(張養浩), 우집(虞集) 등 문인들과 접촉을 자주 갖고 학문과 식견을 넓힐 수 있었고, 원나라에 머무는 동안 세 차례나 대륙 깊은 곳까지 둘러봄으로써 견문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고려로 돌아와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된 뒤에는 문란해진 정치기강을 바로잡고 새로운 시책을 펴는 데 참여하여 여러 항목의 개혁안을 제시하였고, 공민왕(恭愍王) 즉위 후 네 번이나 재상이 되었다. 정치적인 경륜뿐만 아니라 학자로서도 성리학의 수용과 발전에 큰 역할을 했고, 빼어난 유학지식과 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사학(史學)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민지(閔漬)의 본조편년강목(本朝編年綱目)을 중수(重修)하는 일을 맡았고, 충렬왕·충선왕·충숙왕의 실록을 편찬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만년에 국사(國史)를 편찬했는데, 기년전지(紀年傳志)의 기전체를 계획해 백문보(白文寶)·이달충(李達衷)과 함께 일을 진행시켰으나 완성시키지는 못하였다.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전아하고 웅혼한 시문을 많이 남겼다. 이제현의 저술로 현존하는 것은 익재난고(益齋亂藁) 10권과 역옹패설(櫟翁稗說) 2권이다. 흔히 이것을 합해 익재집(益齋集)이라 한다. 이색(李穡)은 묘지명에서 “도덕의 으뜸이요, 문학의 종장이다.[道德之首, 文章之宗.]”라고 그의 인품과 업적을 찬양하였다. 경주의 구강서원(龜岡書院)과 금천(金川)의 도산서원(道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 감회[感懷] 지난 일을 더듬어 생각하며 느끼는 회포(懷抱). 지난 일을 돌이켜 볼 때 느껴지는 회포. 마음에 느낀 생각과 회포, 감상(感想)과 회포(懷抱). 감구지회(感舊之懷)의 준말.
❍ 금대[金臺] 연(燕) 소왕이 세워 어진 선비를 대접했다는 황금대(黃金臺).
❍ 기유생[棄繻生] 기유생(棄繻生)은 유(繻: 지금의 증명과 같다)를 버린 선비라는 뜻으로 즉 한(漢) 나라 종군(終軍)을 가리킨다. 종군이 약관(弱冠)에 제남(濟南)으로부터 박사관(博士館)으로 갈 적에 걸어서 관문(關門)에 들어서자 관리(關吏)가 종군에게 유를 주었다. 종군이 “이것이 무어냐?”라고 묻자 관리가 “돌아올 때에 이것을 반납하여 부절에 맞추어 확인하기 위함이다.”라고 하니, 종군이 “대장부가 서쪽에 나왔다가 출세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갈 수 없다.”라고 하고는 그 유를 버리고 갔는데, 뒤에 종군이 알자(謁者 관명)가 되어 사행(使行) 자격으로 다시 이 관문으로 나가게 되자 관리가 말하기를 “이 사자(使者)가 바로 옛날에 유를 버리고 간 그 선비이다.”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漢書 卷64 終軍傳>
❍ 상림일지[上林一枝] 상림(上林)은 상림원(上林苑)의 준말. 당 태종(唐太宗)이 이의보(李義父)를 처음으로 불러들여 영오시(詠烏詩)를 짓게 하자, 이의보가 읊기를 “태양은 아침에 나부끼고 거문고에선 야제곡을 듣네. 상림원의 하 많은 나무, 한 가지도 빌려주지 않네[日影颺朝彩 琴中聞夜啼 上林多少樹 不借一枝棲]”라고 하니, 태종이 “어찌 가지 하나뿐이겠는가, 내가 너에게 나무 전체를 다 빌려주리라.”라고 했다는 고사이다.
❍ 완급[緩急] 위급한 일로 정사(政事)를 처리함을 뜻함.
❍ 장경제주[長卿題柱] 장경은 한(漢)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字). 사마상여가 일찍이 꼭 출세하겠다는 각오로, 촉(蜀)의 승선교(昇仙橋)를 지나면서 교주(橋柱)에다 “고거사마(高車駟馬)를 타지 않고는 내가 이 다리를 다시 지나지 않으리라.”라고 쓰고 갔다는 고사이다.
❍ 조충[雕虫] 조충소기(雕虫小技)의 준말로, 벌레 모양이나 전서(篆書)를 조각하듯이 미사여구(美詞麗句)로 문장을 꾸미는 조그마한 기교라는 뜻인데, 즉 자기의 문장이 하찮다는 겸사이다.
❍ 종정[鍾情] 애정을 쏟음.
❍ 주리[珠履] 사기(史記) 춘신군전(春申君傳)에 “조(趙) 나라 평원군(平原君)이 초(楚) 나라 춘신군(春申君)에게 자기 문객(門客)을 보내자, 춘신군이 그를 아주 좋은 관사(館舍)에 묵게 하였다. 그러자 평원군 문객이 춘신군에게 호사(豪奢)한 것을 과시하기 위하여, 대모잠(瑇瑁簪: 바다거북 등껍데기로 장식한 비녀)을 꽂고 구슬로 장식한 칼집을 차고는 춘신군의 문객에게 인사를 청하니, 춘신군의 문객이 3천여 명이나 되는데 상객(上客)은 모두 구슬로 만든 신을 신었으므로, 평원군의 문객이 매우 부끄럽게 여겼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추자예거[鄒子曳裾] 출세하여 왕후(王侯)의 문에 출입했다는 뜻이다. 추자는 한 나라 때 유세객(遊說客)인 추양(鄒陽)을 가리키며, 예거(曳裾)는 긴 옷자락을 늘어뜨린다[曳長裾]의 준말로, 즉 왕후의 문에 출입한다는 뜻이다. 추양이 오(吳)에 벼슬할 적에 글을 올려 간하기를 “지금 신(臣)이 만일 간교한 마음을 다한다면 어느 왕후의 문엔들 긴 옷자락 늘어뜨리지 못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漢書 卷51 鄒陽傳>
❍ 탄협객[彈鋏客] 칼자루를 치는 객, 즉 제(齊) 나라 맹상군(孟嘗君)의 문객인 풍환(馮驩)을 가리킨다. 풍환이 일찍이, 맹상군이 자기를 후하게 대접하지 않은 데에 불평을 품고 칼자루를 치면서 노래하기를 “돌아가자, 밥을 먹으려도 고기가 없구나. 돌아가자, 밖엘 나가려도 수레가 없구나.”라고 한 데서 온 말로, 곧 현달하지 못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史記 卷75 孟嘗君傳>
❍ 투핵[投劾] 스스로의 잘못을 탄핵하고 벼슬을 물러나다[사임하다].
❍ 행장[行藏] 나가서 벼슬함과 물러나 은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