改新國號爲朝鮮二首[개신국호위조선2수] 국호를 조선이라 정하였으니
- 元天錫[원천석] -
王家事業便成塵[왕가사업편성진] 왕씨의 고려 문득 티끌이 되니
依舊山河國號新[의구산하국호신] 산하는 여전한데 나라이름 새롭네
雲物不隨人事變[운물불수인사변] 풍광은 변하는 안간사 안 따름이
尙令閑客暗傷神[상령한객암상신] 오히려 나그네의 슬픔을 자아내네
恭惟天子重東方[공유천자중동방] 생각건대 천자께서 동방을 중히 여겨
命號朝鮮理適當[명호조선이적당] 조선이라 이름하니 그 이치 적당하네
箕子遺風將復振[기자유풍장부진] 기자가 남긴 풍속 장차 다시 떨쳐 일면
必應諸夏競觀光[필응제하경관광] 응당히 여러 나라 다투듯 보러 오리
❍ 원천석[元天錫] 고려후기 정치의 문란함에 개탄하여 출사하지 않은 은사(隱士).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자정(子正), 호는 운곡(耘谷). 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사람이다. 문장과 학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출세를 단념한 채 한 번도 관계(官界)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은사(隱士)로 지냈다. 그는 이방원(李芳遠, 뒤의 태종(太宗))의 스승을 지낸 적이 있어 태종이 즉위 후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고, 치악산에 있는 그의 집으로 친히 찾아와도 자리를 피했다.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야 백의(白衣)를 입고 서울로 와 태종을 만났다고 한다. 비록 향촌에 있었으나 여말선초의 격변하는 시국을 개탄하며 현실을 증언하려 했다. 문집으로는 운곡시사(耘谷詩史)가 전한다. 이 문집은 왕조 교체기의 역사적 사실과 그에 관한 소감 등을 천수(千首)가 넘는 시로 읊은 것으로 제목도 시사(詩史)라 했다. 또 만년에 야사 6권을 저술하고 “이 책을 가묘에 감추어두고 잘 지키도록 하라.”고 자손들에게 유언하였는데, 증손대에 이르러 국사와 저촉되는 점이 많아 화가 두려워 불살라버렸다고 한다. 강원도 횡성의 칠봉서원(七峯書院)에 제향되었다.
❍ 운물[雲物] 경물(景物). 구름의 빛깔. 풍경. 운무(雲霧). 꽃구름. 태양 가까운 곳에 있는 구름의 빛깔을 가리키는데, 상고 시대에는 그것으로써 길흉(吉凶)과 수한(水旱: 장마, 가뭄)을 예측하였다.
❍ 운물[雲物] 태양 주위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구름의 색깔로 천재지변을 헤아리던 방법이다. 주례(周禮) 춘관(春官) 보장씨(保章氏)에는 “다섯 가지 구름 빛깔로 길흉, 가뭄과 홍수, 풍년과 흉년의 조짐을 분별하였다.[以五雲之物, 辨吉凶, 水旱降豐荒之祲象.]”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이 말하기를 “물(物)은 색이다. 태양 주변 운기(雲氣)의 색을 본다. 강(降)은 내리는 것이다. 홍수와 가뭄이 나라에 내려질 것을 알 수 있다.[物, 色也. 視日旁氣雲之色. 降, 下也. 知水旱所下之國.]”라고 하였고, 정사농(鄭司農: 정중鄭衆)이 말하기를 “동지와 하지, 춘분과 추분에 구름의 색을 관찰하는데, 푸른빛이면 충해(蟲害)가 생기고, 흰빛이면 사람이 죽고, 붉은빛이면 병란과 기근이 일어나고, 검은빛이면 수해가 발생하고, 누른빛이면 풍년이 든다.[以二至二分觀雲色, 靑爲蟲, 白爲喪, 赤爲兵荒, 黑爲水, 黃爲豐.]”라고 하였다.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5년 조에 “춘분과 추분, 동지와 하지, 입춘과 입하, 입추와 입동에 반드시 운물을 기록하니, 이는 재해를 대비하기 위해서이다.[凡分至啓閉, 必書雲物, 爲備故也.]”라고 하였다. 분(分)은 춘분, 추분. 지(至)는 하지, 동지. 계(啓)는 입춘, 입하. 폐(閉)는 입추, 입동을 이른다.
❍ 제하[諸夏] 중국 본토 안에 있는 모든 제후의 나라. 주대(周代)에 중원(中原) 지역에 분봉(分封)한 각 제후국(諸侯國)으로, 중원(中原) 지역을 두루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