遣懷[견회] 반백년 살고보니
- 李穡[이색] -
倏忽百年半[숙홀백년반] 훌쩍 지나가버린 반백년 세월
蒼黃東海隅[창황동해우] 동해 한 구석에서 허둥대었네
吾生元跼蹐[오생원국척] 나의 삶 본시 조심스러웠으나
世路亦崎嶇[세로역기구] 세상살이 또한 험난하였네
白髮或時有[백발혹시유] 백발은 어느 때나 있는 것이고
靑山何處無[청산하처무] 청산이야 어디 간들 없으랴마는
微吟意不盡[미음의부진] 나직이 읊조리니 생각 그지없어
兀坐似枯株[올좌사고주] 마른등걸처럼 우두커니 앉아있네
❍ 이색[李穡] 고려(高麗) 말의 문신(文臣)이자 학자(學者)이다. 본관(本貫)은 한산(韓山)으로 이곡(李穀)의 아들이다. 자 영숙(潁叔)이고 호 목은(牧隱)이며 시호 문정(文靖)이다. 이제현(李齊賢)의 문인(文人)으로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정방 폐지, 3년상을 제도화하고, 김구용(金九容)·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우왕(禑王)의 사부였다.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으로 우왕이 강화로 유배되자 조민수(曺敏修)와 함께 창(昌)을 즉위시켜 이성계(李成桂)의 세력을 억제하려 하였으나 이성계가 득세하자 장단(長湍)·함창(咸昌) 등지에 유배되었다. 1391년(공양왕恭讓王 3) 석방되어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에 책봉되었으나 다시 여흥(驪興)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조선 개국 후 인재를 아낀 태조가 1395년 한산백(韓山伯)에 책봉했으나 사양, 이듬해 여강(驪江)으로 가던 중 죽었다. 문하에 권근(權近)·김종직(金宗直)·변계량(卞季良) 등을 배출, 학문과 정치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저서에 목은시고(牧隱詩藁), 목은문고(牧隱文藁)가 있다.
❍ 견회[遣懷] 시름을 떨치다. 회포를 풀다. 견회(遣懷)는 견흥(遣興)과 같은 말로, 회포를 토로하여 답답한 마음을 달래 보낸다는 뜻이다. 참고로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가석(可惜)에 “마음을 너그럽게 하는 것은 응당 술이요, 흥을 달래 보내는 것은 시보다 나은 것이 없다오.[寬心應是酒, 遣興莫過詩.]”라고 하였다.
❍ 숙홀[倏忽] 훌홀(烼忽)의 원말. 홀연히. 갑자기. 매우 빠르게. 어느덧. 별안간. 돌연. 잠깐. 문득. 개가 빠르게 달려 붙잡을 수 없다는 뜻에서 하는 말.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흘러가다. 너무 빨라서 잡을 수가 없는 것을 가리킨다. 여씨춘추(呂氏春秋) 결승(決勝)에 “오가는 게 너무 빨라서 그 방향을 알 수가 없다.[倏忽往來, 而莫知其方.]”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백우잡행(百憂雜行)에서 “홀연히 나이 쉰 되어버린 지금, 자주 앉고 누울 뿐 걸으려고 하지 않네.[即今倏忽已五十 坐臥只多少行立]”라고 하였다.
❍ 창황[蒼黃] 창황(倉皇), 너무 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매우 다급함. 허둥대는 모습.
❍ 국척[跼蹐] 몸을 굽히고[跼] 소리나지 않게 살금살금 걷다[蹐]. 곧 몹시 두려워 몸 둘 바를 모름. 국천척지(跼天蹐地)의 준말로, 머리가 하늘에 닿을까 허리를 굽혀 걷고(跼), 땅이 꺼질까 봐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떼는 것(蹐)을 말한다. 겁 많고 소심하여 몸 둘 곳을 몰라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시경(詩經) 정월(正月)에 “하늘이 높다고 하나, 감히 몸을 굽히지 않을 수 없으며, 땅이 두껍다고 하나, 감히 발을 포개 딛지 않을 수 없노라.[謂天蓋高, 不敢不跼. 謂地蓋厚, 不敢不蹐.]”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몹시 두려워서 불안해하는 모양을 의미한다.
❍ 기구[崎嶇] 처세에 어려운 고비가 많다. 세상살이가 순탄하지 못하고 가탈이 많다. 삶이 순조롭지 못하고 온갖 어려움을 겪는 상태에 있다. 줏대 없이 비굴하게 아첨하다.
❍ 기구[崎嶇] 산길이 가파르고 험하다. 또는 지세(地勢)나 도로가 평탄하지 않고 험하다.
❍ 올좌[兀坐] 똑바로 앉다. 꼿꼿이 앉다. 바르게 앉다.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음. 어깨를 추켜세우고 앉아 있음. 꼼짝도 하지 않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똑바로 앉아 있음. 오뚝이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불가(佛家)의 참선(參禪)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