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夜洛城聞笛[춘야낙성문적] 봄밤에 낙양성에서 피리소리를 듣다
- 李白[이백] -
誰家玉笛暗飛聲[수가옥적암비성] 누구인가 은은히 들려오는 피리소리
散入春風滿洛城[산입춘풍만낙성] 봄바람에 흩들어 낙양성에 가득하네
此夜曲中聞折柳[차야곡중문절류] 이 밤 부는 곡중에 절류곡도 들리니
何人不起故園情[하인불기고원정] 누구인들 고향생각 일어나지 않으랴
❍ 수가[誰家] 누구네 집. 어떤 곳. 누구. 어떤 사람. 이백(李白)의 시 춘야낙성문적(春夜洛城聞笛)에 “누군가 불어대는 피리 소리가, 봄바람 타고 온 낙성으로 퍼져 나가네.[誰家玉笛暗飛聲 散入春風滿洛城]”라고 하였다.
❍ 옥적[玉笛] 옥으로 만든 대금(大笒) 비슷하게 만든 피리. 청옥이나 황옥으로 만든, 대금과 비슷한 모양의 피리.
❍ 암비성[暗飛聲] 피리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은은히 들려옴을 형용함.
❍ 낙성[洛城] 낙양성(洛陽城). 당나라 부도(副都)인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 절류[折柳] 별리곡(別離曲)인 절양류(折楊柳)로 악부곡(樂府曲) 이름인데, ‘버드나무 가지를 꺾다’라는 뜻으로 이별을 나타낸다. 절류가 이별을 뜻하게 된 데는 멀리 주(周)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한대(漢代)에 이르러 풍속화가 되었다고 한다. 한대(漢代) 장안(長安)의 사회상을 기록한 삼보황도(三輔黃圖)에 “패교는 장안 동쪽 물을 건너기 위해 세운 다리이다. 한인(漢人)들이 길 떠나는 이와 헤어질 때, 이 다리에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며 이별했다.[覇橋在長安東, 誇水作橋, 漢人送客至此橋, 折柳送別.]”라고 하였다. 버들은 이별할 때 꺾어주던 상징물로 몇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버들은 봄철에 가장 빨리 잎을 틔우기 때문이다. 이는 길 떠난 이가 봄철 잎을 틔운 버들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재촉하는 마음을 지니길 바라는 보내는 이의 마음이 담겼다. 둘째, 버들은 생명력이 강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는 길 떠난 이가 어디를 가던 건강하기를 바라는 보내는 이의 마음이 담겨있다. 셋째, 버들은 가늘어 말채찍으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떠나는 이가 어서 말을 몰고 갔다 오기를 바라는 보내는 이의 마음을 담고 있다.
❍ 절양류가[折楊柳歌] 절양류(折楊柳)는 횡취곡명(橫吹曲名)이기도 하고 사패명(詞牌名)이기도 하다. 한(漢)나라 때 장건(張騫)이 서역(西域)에서 덕마하두륵곡(德摩河兜勒曲)을 전하여 들여왔고, 이연년(李延年)이 이를 인하여 신성(新聲) 28해(解)를 만들어 무악(武樂)으로 삼았는데, 위진(魏晉) 시대에 옛 가사를 잃어버렸다. 그 뒤 진(晉) 태강(太康) 말엽에 경락(京洛)에 절양류가(折楊柳歌)가 있었는데, 이는 대부분 군사들의 수고로움을 노래한 것이었다. 남조(南朝)의 양(梁)과 진(陳) 및 당(唐)나라 사람들의 작품은 대부분 봄날을 상심하고 이별을 슬퍼하는 노래로 읊었으며, 정벌 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작품도 있다. 곡은 대부분 5언으로 되어 있으며, 오직 당나라 때에만 7언으로 읊었다.
❍ 절양류곡[折楊柳曲] 절양류(折楊柳)는 옛 악부(樂府)의 사곡(詞曲) 이름이다. 대개 중국 고대의 이항(里巷) 가요(歌謠)에서 나온 것으로 이별의 노래라고 한다. 한(漢)나라 사람들이 전별할 때 장안(長安) 동쪽에 있던 파교(灞橋)에 이르러 버들가지를 꺾어 주었던 데서 유래하였는데, 중국에서는 이별할 때에, 여행 중 무사하라고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둥글게 원을 만들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
❍ 절양황화[折楊黃華] 절양(折楊)과 황화(黃華)는 옛날의 속곡(俗曲) 이름으로, 세속 사람들이 좋아하는 저급한 음악이다. 왕안석(王安石)의 기제영주백설루(寄題郢州白雪樓)에서 “절양과 황화 듣곤 좋아서들 활짝 웃고, 양춘과 백설에는 화답하는 사람 적지.[折楊黃華笑者多 陽春白雪和者少]”라고 하였다.
❍ 고원정[故園情]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고원(故園)은 전(前)에 살던 곳, 고향(故鄕)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