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詩[논시] 시에 대하여
- 李奎報[이규보] -
作詩尤所難[작시우소난] 시를 지음에 특히 어려운 것은
語意得雙美[어의득쌍미] 말과 뜻이 어울려 아름다운 것
含蓄意苟深[함축의구심] 품어 쌓은 뜻이 참으로 깊어야
咀嚼味愈粹[저작미유수] 씹을수록 그 맛이 더욱 순수해
意立語不圓[의립어불원] 뜻만 서고 말이 원숙치 못하면
澁莫行其意[삽막행기의] 난삽하여 뜻이 전해질 수 없네
就中所可後[취중소가후] 이중에 뒤에 둬도 괜찮은 것은
雕刻華艶耳[조각화염이] 아로새겨 겉도 곱게 꾸미는 일
華艶豈必排[화염기필배] 곱게 꾸밈을 어찌 배척만 하리
頗亦費精思[파역비정사] 이 또한 많은 정성 쏟아야하네
攬華遺其實[남화유기실] 꽃만 따고 열매를 버리게 되면
所以失詩旨[소이실시지] 시의 참된 맛을 잃게 되건마는
邇來作者輩[이래작자배] 요즘 들어 시를 짓는 무리들은
不思風雅義[불사풍아의] 시의 고아한 뜻은 생각지 않고
外飾假丹靑[외식가단청] 거짓 치장 화려히 겉만을 꾸며
求中一時嗜[구중일시기] 한 때의 기호에나 맞추려 하네
意本得於天[의본득어천] 뜻은 본래 하늘이 내려주는 것
難可率爾致[난가솔이치] 찾아다녀서도 이루기 어렵다네
自揣得之難[자췌득지난] 자기 짐작에 얻기 어려움 알아
因之事綺靡[인지사기미] 화려히 꾸미기만을 일삼는다네
以此眩諸人[이차현제인] 이로 여러 사람 눈을 현혹시켜
欲掩意所匱[욕엄의소궤] 깊은 뜻이 없음을 가리려 하네
此俗寖已成[차속침이성] 이런 습속에 이미 다 젖어들어
斯文垂墮地[사문수타지] 사문이 땅바닥에 떨어져버렸네
李杜不復生[이두불부생] 이백과 두보 다시 나지 못하니
誰與辨眞僞[수여변진위] 누구와 함께 진짜 가짜 가릴까
我欲築頹基[아욕축퇴기] 무너진 터를 다시 쌓고 싶지만
無人助一簣[무인조일궤] 흙 한삼태기 보태줄 사람 없네
誦詩三百篇[송시삼백편] 삼백 편의 시를 외운다 하여도
何處補諷刺[하처보풍자] 어디에다 풍자함을 더하겠는가
自行亦云可[자행역운가] 나 혼자 하는 거야 괜찮겠지만
孤唱人必戱[고창인필희] 외로운 내 노래 남들은 웃으리
<論詩논시 / 시를 논하다 / 李奎報이규보 : 東國李相國文集동국이상국집>
❍ 이규보[李奎報] 고려후기(高麗後期)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문장가. 본관은 황려(黃驪: 여주). 자는 춘경(春卿), 초명은 인저(仁低),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다. 9세 때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들어 14살에는 문헌공도(文憲公徒)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소년시절 술을 좋아하며 자유분방하게 지냈는데, 과거지문(科擧之文)을 하찮게 여기고 이인로(李仁老), 오세재(吳世才), 임춘(林春), 조통(趙通),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지(李潭之) 등 강좌칠현(姜左七賢)과 교유하였다. 23세 때 겨우 진사에 급제했으나 출세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26세에 개성으로 돌아와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당시의 문란한 정치와 혼란한 사회를 보고 크게 각성하여 동명왕편(東明王篇)을 지었다. 그 후 최충헌(崔忠憲)정권에 시문으로 접근하여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고 32세 때부터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좌천과 부임, 면직과 유배 그리고 복직 등을 거듭하면서 다사다난한 생을 보냈다. 저서로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등의 저서와 많은 시문(詩文)을 남겼다.
❍ 원숙[圓熟] 기술, 기예, 지식 따위의 경지가 보통의 단계를 넘어 빈틈이 없이 노련하고 숙련됨. 충분히 성숙되어 무르익다. 원숙하다. 매우 익숙하다. 인격이나 지식 따위가 깊고 원만하다.
❍ 난삽[難澁] 난삽하다. 필요 이상으로 어렵고 산만해서 내용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글이나 말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어렵고 까다롭다.
❍ 취중[就中] 특별히 그 가운데. 그 중에서도 특히. 중간에서 (어떤 일을 하다). 그 중. 그 가운데.
❍ 풍아[風雅] 시경(詩經)의 풍(風)과 아(雅). 곧, 시(詩). 풍류(風流)와 문아(文雅). 고상(高尙)하고 멋이 있음.
❍ 자췌[自揣] 스스로 예상하다. 스스로 짐작하다.
❍ 기미[綺靡] 화미(華美)하다. 화려(華麗)하다. 문사(文詞)가 화려하다.
❍ 사문[斯文] 우아하다. 점잖다. 고상하다. 유교(儒敎)의 도의(道義)나 또는 문화(文化)를 일컫는 말. 유학자(儒學者)를 달리 일컫는 말.
❍ 일궤[一簣] 한 삼태기. 한 삼태기의 흙, 곧 얼마 안 되는 분량(分量)을 이르는 말.
❍ 저작[咀嚼]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의미를 음미하다. 되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