守歲[수세] 한 해를 보내며
- 蘇軾[소식] -
欲知垂盡歲[욕지수진세] 한 해의 끝자락을 알고 싶은가
有似赴壑蛇[유사부학사] 구멍으로 들어가는 뱀과 같다네
修鱗半已沒[수린반이몰] 비늘 돋친 긴 몸 반 넘게 숨으면
去意誰能遮[거의수능차] 떠나려는 그 뜻을 누가 막으랴
況欲繫其尾[황욕계기미] 그 꼬리 잡아 매어두고 싶어도
雖勤知奈何[수근지내하] 아무리 애를 쓴들 어쩔 수 없네
兒童强不睡[아동강불수] 아이들은 억지로 잠들지 않으려
相守夜讙譁[상수야환화] 서로 밤을 지키며 떠들어 대네
晨雞且勿唱[신계차물창] 새벽닭아 한동안 울지 말아라
更鼓畏添撾[경고외첨과] 새벽 북 쳐댈까 두려웁구나
坐久燈燼落[좌구등신락] 오래 앉아 등잔심지 타 떨어지고
起看北斗斜[기간북두사] 일어나 하늘 보니 북두성 기울어
明年豈無年[명년기무년] 내년엔들 어찌 살날 없으랴마는
心事恐蹉跎[심사공차타] 헛된 나이만 먹을까 걱정이라네
努力盡今夕[노력진금석] 오늘 밤이 다 가도록 노력하리라
少年猶可誇[소년유가과] 나이 적은 것은 자랑할 만하거니
※ 이 시는 아래와 같이 병서(幷序)처럼 보이는 원제(原題) 밑에 붙어 있는 궤세(饋歲), 별세(別歲), 수세(守勢)라는 소제(小題)의 연작시(連作詩) 세 수 중 한 수이다.
원제原題 : 세밑에 서로 선물을 주며 안부를 묻는 것을 ‘궤세(饋歲)’라 하고,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서로 부르는 것을 ‘별세(別歲)’라 부르며, 섣달 그믐날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잠을 자지 않는 것을 ‘수세(守歲)’라 한다. 촉(蜀) 지방의 풍속이 이와 같다. 나는 기산(岐山) 아래에 관리로 있어 세모에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니, 이에 세 편의 시를 지어 아우 자유(子由)에게 보낸다[歲晚相與饋問, 爲饋歲;酒食相邀, 呼爲別歲;至除夜, 達旦不眠, 爲守歲. 蜀之風俗如是. 餘官於岐下, 歲暮思歸而不可得, 故爲此三詩以寄子由.]
❍ 소식[蘇軾] 송(宋) 신종(神宗)·철종(哲宗) 때의 문인으로 미주(眉州) 미산(眉山: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미산眉山) 사람이다. 자는 자첨(子瞻)·화중(和仲)이며,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정상재(靜常齋)·설랑재(雪浪齋)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벼슬은 항주통판(杭州通判)·항주지주(抗州知州) 등을 지냈는데 치적이 있었고,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예부상서(禮部尙書)에 이르렀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여 좌천되었으나 뒤에 철종(哲宗)에게 중용(重用)되었다. 소순(蘇洵)의 아들이자 소철(蘇轍)의 형으로 이 삼부자를 삼소(三蘇)라 부르는데 각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자리를 차지하였다. 시는 송대(宋代)의 제1인자로 꼽히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하였다. 사(詞)에서는 신기질(辛棄疾)과 함께 소신(蘇辛)으로, 시에서는 황정견(黃庭堅)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병칭되었으며, 그림에서도 황정견(黃庭堅), 미불(米芾), 채양(蔡襄) 등과 함께 송사가(宋四家)로 불렸다. 또한 경사(經史)에 통하여 그의 학파를 촉파(蜀派)라 한다. 그의 시 적벽부(赤壁賦)가 유명하고, 저서에 역서전(易書傳), 논어설(論語說), 구지필기(仇池筆記), 동파칠집(東坡七集), 동파악부(東坡樂府), 동파지림(東坡志林), 동파전집(東坡全集) 등이 있다.
❍ 기하[岐下] 기산(岐山) 아래. 기산은 지금의 중국 섬서성(陝西省) 기산현(岐山縣) 동북(東北)쪽에 있는 산으로, 주(周)나라의 선조(先祖) 고공단보(古公亶父: 태왕太王)가 빈(邠: 빈豳)에서 적인(狄人: 북쪽 오랑캐)의 괴롭힘을 피하여 기산(岐山) 아래에 터를 잡아 주(周) 왕조(王朝)의 기틀을 다진 곳이다. <詩經 大雅 綿>·<孟子 梁惠王 下>
❍ 자유[子由] 소철(蘇轍)의 자(字)이다. 문장과 시로 유명했다. 호(號)는 영빈(潁濱)이며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아우로 아버지 소순(蘇洵)과 함께 삼소(三蘇)로 칭해지는데, 이들 삼부자(三父子)는 모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해 있다. 일찍이 진사로 출사하여 문하시랑(門下侍郞),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올랐으나 치사(致仕)하고 허주(許州),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허창시(許昌市)에 은둔하였다. 저서로는 난성집(欒城集), 춘추집해(春秋集解), 노자해(老子解) 등이 있다.
❍ 수세[守歲] 옛날 세시(歲時) 풍속의 하나로 제석(除夕)에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집 안 곳곳에 불을 밝혀 밤을 지키는 풍속으로, ‘해지킴’이라고도 한다. 이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속설이 있으며, 잠을 자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눈썹에 밀가루나 쌀가루를 발라두었다가 잠에서 깨면 눈썹이 세었다고 놀리기도 한다. 맹호연(孟浩然)의 시 세제야유회(歲除夜有懷)에 “섣달그믐엔 집집마다 잠을 자지 않으니, 그리워도 꿈속에서 가볼 수 없네[守歲家家應未臥 想思那得夢魂來]”라고 하였다.
❍ 수세[守歲] 섣달 그믐날 불을 밝히고 밤을 새우는 일. 세밑 밤에 잠들지 않은 채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것을 가리킨다. 진(晉) 나라 주처(周處)의 풍토기(風土記)에 “서촉 지방 풍속에 세말이면 이웃 간에 서로 음식을 보내서 문안하는 것을 궤세라 하고, 주식을 장만해서 서로 초청하여 노는 것을 별세라 하고, 섣달 그믐날 저녁에 이르러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는 것을 수세라 한다[蜀之風俗, 晩歲相與餽問, 謂之餽歲. 酒食相邀, 爲別歲. 至除夕, 達旦不眠, 謂之守歲.]”라고 하였다.
❍ 수세[守歲] 가는 해를 지킨다는 뜻으로, 음력 섣달 그믐날 제야(除夜)에 온 집안을 밝히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잠을 자지 않고 버티면서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해를 맞는 풍습이다. 민간에서는 이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북송(北宋)의 맹원로(孟元老)가 쓴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섣달 그믐날 밤, 궁중에서는 폭죽(爆竹) 소리와 만세(萬歲) 소리가 가득하고, 사서인(士庶人)의 집에서는 가족들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밤을 지새우는 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是夜禁中爆竹山呼, 聲聞於外. 土庶之家, 圍爐團坐, 達旦不寐, 謂之守歲.]”라고 하였다.
❍ 유사[有似] 같다. 닮은 데가 있다. 비슷하다. 한유(韓愈)의 시 증최입지평사(贈崔立之評事)에 “가련타 무익하게 정신을 써버리다니, 황금을 빈 골짜기에 던져버린 것 같네[可憐無益費精神 有似黃金擲虛牝]”라고 하였다.
❍ 수린[修鱗] 큰 물고기나 뱀을 가리킨다. ‘修’는 ‘長’과 같다. 鱗은 비늘로, 비늘 있는 동물의 총칭이다. 특히 물고기나 뱀, 용 따위의 비늘이 있는 동물을 이른다.
❍ 환화[讙譁]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떠들썩한 것. 큰 소리로 웃고 이야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 경고[更鼓] 경(更)은 시간으로 경고는 밤중에 시각을 알리기 위해 치는 북소리를 말한다. 고대에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하룻밤을 초경(初更: 일경一更), 이경(二更), 삼경(三更), 사경(四更), 오경(五更)까지의 다섯 구간으로 나누고 북을 울려 시각을 알렸다. 오경(五更)은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이다.
❍ 등신[燈燼] 등불의 심지가 다 타고 까맣게 재가 된 것을 가리킨다.
❍ 무년[無年] 수명이 짧음. 더 살지 못할 수명. 살 수 있는 해가 많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흉년이 든 해를 가리킨다.
❍ 심사[心事] 걱정거리. 시름. 마음으로 바라는 것. 이하(李賀)의 시 치주행(致酒行)에 “젊은 뜻 마땅히 구름을 거머잡아야지, 처량하게 비탄한들 누가 알아주겠는가[少年心事當拏雲 誰念幽寒坐鳴呃]”라고 하였다.
❍ 차타[蹉跎] 시기(時期)를 놓침. 시간을 헛되이 보냄. 일을 이루지 못하고 나이가 많아짐. 미끄러져 넘어짐. 세월을 허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