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堂飮旣...[서당음기...] 서당에서 술 마시고 나서
- 杜甫[두보] -
湖水林風相與淸[호수림풍상여청] 호수 물 숲 바람 같이 맑아서
殘尊下馬復同傾[잔준하마부동경] 남은 술 말에서 내려 다시 마시네
久判野鶴如霜鬢[구판야학여상빈] 오래 둔 들 학 같은 하얀 귀밑털
遮莫鄰雞下五更[차막린계하오경] 두어라 저 닭이야 새벽을 울든 말든
<書堂飮旣, 夜復邀李尙書下馬, 月下賦絶句서당음기, 야복요이상서하마, 월하부절구 / 서당에서 술 마시고 나서 밤 되어 다시 이상서를 맞아 말에서 내려 달 아래 절구를 짓다 / 杜甫두보>
❍ 두보[杜甫]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두릉야로(杜陵野老), 두릉포의(杜陵布衣) 등이 있다. 양양(襄陽) 지방 출신으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40대인 천보(天寶) 14년(755년)에야 비로소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당시 장안에서 반군에게 잡혔다가 탈출, 숙종(肅宗)의 진영에 합류하여 좌습유(左拾遺)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지낸 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두습유(杜拾遺), 두공부(杜工部) 등으로 불렀고, 또 장안성 밖 소릉(少陵)의 초당(草堂)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두소릉(杜少陵), 두초당(杜草堂)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함께 이두(李杜)로 불렸는데, 두목(杜牧)과 이상은(李商隱)의 합칭인 소이두(小李杜)와 구별하기 위해 대이두(大李杜)라고도 부른다. 문학을 발판 삼아 벼슬로 나아가려던 그의 꿈이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짧은 한때를 빼고는 평생을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중국의 서북 지역을 유랑하다가 결국 병사했다. 벼슬살이와 달리 문학, 특히 시에서 이룬 성취가 대단하였다. 남긴 시가 1500여 수에 달하며 작품집으로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그 자신은 시성(詩聖)으로, 또 그의 시는 시사(詩史)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 호수임풍[湖水林風] 호수의 물과 산에서 부는 바람을 가리킨다. ‘水’를 ‘月’로 쓴 본도 있다.
❍ 잔준[殘尊] 남은 술을 가리킨다. ‘尊’은 ‘樽’과 같고 ‘준’으로 읽는다.
❍ 구판[久判] 오랫동안 버려두다. 자포자기하다. 두보(杜甫)의 시 곡강대주(曲江對酒)에 “술만 마시며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조정에도 나가지 못해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네.[縱飮久判人共棄 懶朝眞與世相違]”라고 하였다.
❍ 차막[遮莫] 속어로 진교(儘敎)와 같은 뜻인데, 진관(儘管) 혹은 막론(莫論)의 뜻이다. 제한을 가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게 하는 것을 이른다. 종교(從敎), 임교(任敎)라고도 말한다. 소식(蘇軾)의 시 차운답보각(次韻答寶覺)에 “짚신에 대지팡이, 행전까지 갖췄는데, 넘을 산이 만 개인들 무슨 상관 있으랴.[芒蹊竹杖布行纏 遮莫千山更萬山]”라고 하였다. 농암집(農巖集) 제34권 잡지(雜識) 외편(外篇)에 “당(唐)나라 사람들의 시에 쓴 遮莫(차막)은 그 말뜻을 상고해 보면 애당초 금지하는 말이 아니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대부분 금지하는 뜻으로 잘못 사용하였으니, 학림옥로(鶴林玉露)에 ‘비록 ~라 하더라도[儘敎]’로 풀이한 것이 옳다.”라고 보인다. 설령 ~라 해도. ~을 막론하고. 설령 ~하더라도. ~에 상관없이. ~만 못하다. 아무래도 ~좋다. 이렇게, 이러한. 얼마든지. 그렇다면 그런대로 둘 수밖에 없다. 될 대로 돼라.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 오경[五更]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시각을 통틀어 일컬음. 즉, 초경(初更), 이경(二更), 삼경(三更), 사경(四更), 오경(五更)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고대에 황혼에서 새벽까지 사이를 다섯 단계로 시각을 나누었는데, 이름은 각각 일경(一更)부터 오경(五更)까지, 일고(一鼓)부터 오고(五鼓)까지, 또는 갑야(甲夜), 을야(乙夜), 병야(丙夜), 정야(丁夜), 무야(戊夜)로 부르기도 했다.
❍ 오경[五更]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눴을 때의 다섯 째 부분.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를 지칭한다. 즉 동이 틀 무렵인 새벽을 가리킨다. 무야(戊夜). 오고(五鼓). 오야(五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