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瀾寺樓[관란사루] 관란사 누각
- 金富軾[김부식] -
六月人間暑氣融[유월인간서기융] 유월이라 세상은 더위에 녹는데
江樓終日足淸風[강루종일족청풍] 강루에는 종일 맑은 바람이 치네
山容水色無今古[산용수색무금고] 산세 물빛은 예와 지금이 없는데
俗態人情有異同[속태인정유이동] 세태 인정은 같고 다름이 있구나
舴艋獨行明鏡裏[책맹독행명경리] 거룻배 홀로 맑은 거울 속에 가고
鷺鷥雙去畵圖中[노사쌍거화도중] 해오라기 한 쌍 그림 속으로 드네
堪嗟世事如銜勒[감차세사여함륵] 슬프다 세상일은 재갈과 굴레 같아
不放衰遲一禿翁[불방쇠지일독옹] 쇠한 대머리 늙은이 놔주지 않누나
❍ 김부식[金富軾]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川). 시호는 문열(文烈). 신라 왕실의 후예로서 경주(慶州)의 주장(州長)인 김위영(金魏英)의 증손자. 얼굴이 검고 우람하였으며 눈이 두리두리하여 무부(武夫) 같으나 글을 잘하였다. 이자겸(李資謙)과 묘청(妙淸)의 난을 물리치고 승승장구하여,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에 책봉되고, 검교태보 수태위 문하시중 판이부사(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中判吏部事)에 올랐다. 이후 형제들이 죽고, 자신의 우호세력인 정습명(鄭襲明)마저 탄핵을 받아 퇴임하자 그 자신 역시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인종은 김부식에게 동덕찬화(同德贊化) 공신호를 더해 주었다. 그리고 의종대에 이르러 낙랑군개국후(樂浪郡開國候)에 봉해졌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왕명으로 50권의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하였다. 한림원에 있을 때에는 사륙변려문체(四六騈儷文體)에서 당·송 시대의 고문체(古文體)를 수용하려 하였다. 유교주의적 대의명분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해 보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전형적인 중세의 유교적 합리주의자였다. 만년(晩年)에는 개성 주위에 관란사(觀瀾寺)를 원찰(願刹)로 세워 불교수행을 닦기도 하였다. 문집은 20여 권이 되었으나 현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글들이 동문수(東文粹)와 동문선(東文選)에 전해져 오는데 우리나라 고문체의 대가라 할 수 있다. 송나라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의 인물조에서 김부식을 “박학강식(博學强識)해 글을 잘 짓고 고금을 잘 알아 학사의 신복을 받으니 능히 그보다 위에 설 사람이 없다.”라고 평하였다.
❍ 속태[俗態] 저속한 행태. 고상하거나 아담스럽지 못한 꼴. 고상(高尙)하지 못하고 아담(雅淡·雅澹)스럽지 못한 모양(模樣). 속된 자태. 저속한 자태.
❍ 이동[異同] 다른 것과 같은 것. 서로 같지 아니함. 서로 다른 점과 같은 점. 이의(異議). 일치하지 않다.
❍ 책맹[舴艋] 돛이 없는 작은 배의 한 가지. 작은 배. 거룻배.
❍ 노사[鷺鷥] 해오라기. 백로과에 속한 새. 몸길이는 1미터 정도이고, 등은 회색, 배는 흰색이며 머리에는 검은 줄이 눈에서 목덜미까지 댕기를 이루고 있다. 작은 연못이나 습지 근처의 숲이나 나무에 둥지를 만들고 살며 개구리나 어류 등의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다. 4~5월이 산란기이며 한 번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 노사[鷺鷥] 백로(白鷺). 鷥(사)는 백로의 머리깃털이 실 같아서 생긴 말이다. 鷺鶿(로자) 로도 쓴다. 白鷺(백로), 鷺鷥(로사), 鷺鶿(로자) 또는 白鷺鷥(백로사), 白鷺鶿(백로자) 모두 같은 말이다.
❍ 감차[堪嗟]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견디기 어려운 슬픔. 가장 슬픔. ‘아하’ 등의 감탄사로도 쓴다.
❍ 함륵[銜勒] 재갈과 굴레. 말을 다루기 위해 말의 입에 가로물리는, 쇠로 된 물건. 굴레가 달려 있으며 한끝에 고삐를 매게 되어 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함(銜)은 말재갈을 입에 물려 말을 모는 것이다.”라 하였고, 또 “륵(勒)은 말머리에 씌우는 고삐이다.”라고 하였다.
❍ 쇠지[衰遲] 쇠약하고 느리다. 노년(老年)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