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당신이 두고 간 화분을 바라봅니다.
넓은 유리창으로는 따스한 봄볕이 들이비치는데
자발 없이 피어난 하얀 목련은
꽃샘바람에 몸을 떱니다.
낮은 곳으로만 줄기를 드리우는
심장 꼴 작은 잎의 이름 모를 화초는
햇볕 바른 창가에 놓아두어도
타고난 속성인지 해를 등지려고만 합니다
자라고 싶은 대로 두어야 할지
그 때마다 줄기를 거두어야 할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떠난다고들 합니다.
떠나고 나면 살아 다시 볼 수 있을지
두렵기만 합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아프도록 가슴에 담은 사람을
지척에 두고도
어떤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한 것
그러한 사람이 떠나가는데, 끝내
그 한마디를 못 하는 것입니다.
꽃샘추위로 오가는 사람이 뜸한
스산한 골목 위를
비를 옥물은
구름 그림자가 스쳐갑니다.
이런 날에 비마저 내린다면
목련은 봄이 다 오기도 전에
피우다만 꽃을 봉우리 째 떨굴 것이
가슴 저밉니다.
화분이 얼마간 저 자리에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오래도록
이 토요일 오후를 기억할 것입니다.
우울한 기다림의 시작을
- 안상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