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아[寒鴉] 반포(反哺)의 의리를 아는 까마귀로, 어미를 사모하는 효자를 비유한 말이다.
♞ 한안[汗顔] 부끄럽거나 두려운 일을 하여 얼굴에 땀을 흘리는 자를 이른다.
♞ 한안국[韓安國]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27년에 죽은 전한(前漢)의 대신이다. 자는 장유(長孺)이고 지금의 하남성 임여현(臨汝縣)인 양국(梁國) 성안(成安) 출신이다. 원래 양효왕(梁孝王) 유무(劉武)를 받들다가 중대부(中大夫)에 임명되었다. 경제(景帝) 3년 기원전 154년,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란 때 그는 장우(張羽)와 함께 출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워 반군이 양나라 땅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후에 양나라의 내사(內史)가 되었다. 한무제 건원(建元) 중에 황제의 명으로 북지군(北地郡)의 도위(都尉)가 되고 이어서 대사농(大司農),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다. 원광(元光) 2년 기원전 133년,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마읍(馬邑)에서 흉노(匈奴)를 무찔렀다. 원삭(元朔) 2년 기원전 127년, 재관장군(材官將軍)이 되어 어양(漁陽)에 주둔하며 흉노를 포로로 잡은 후 흉노가 멀리 달아나 숨어버렸다고 공언하고 이어서 어양의 주둔군을 파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으나 얼마 후에 흉노가 대거 상곡(上谷)과 어양(漁陽)을 침입하여 한나라 군사를 크게 패주시켰다. 후에 주둔지가 우북평(右北平)으로 옮겨졌으나 흉노와의 싸움에서 패한 것에 화병이 나서 죽었다.
♞ 한안국[韓安國] 한(漢) 나라 때 양 효왕(梁孝王)의 중대부(中大夫)였던 한안국(韓安國)이, 무슨 일로 죄를 받게 되었을 때 몽현(蒙縣)의 일개 옥리(獄吏)인 전갑(田甲)이 안국에게 욕을 하였다. 이때 안국은 그에게 말하기를 “죽은 재라고 해서 다시 불붙지 말라는 법이 있다더냐?” 하자 옥리가 대답하기를 “불이 붙기만 하면 오줌을 싸버리리라.” 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안국은 다시 양(梁)의 내사(內史)가 되자 당시 옥리였던 전갑은 그를 찾아가 육단사죄(肉袒謝罪)를 하였다. <史記 卷一百八>
♞ 한양도[漢兩都] 전한(前漢)은 장안(長安)에 도읍하였으니 서도(西都)요, 후한(後漢)은 낙양(洛陽)에 도읍하였으니 동도(東都)이다.
♞ 한양애왕[韓襄哀王] 한양왕(韓襄王)으로도 불리며 재위 기원전 312-296년. 재위 중 시세에 따라 여러 나라에 반복무상하다가 진나라와 연계하여 초나라를 정벌하여 초장 당매(唐昧)를 패주시켰다. 만년에 태자가 죽자 여러 공자들이 그 자리를 놓고 다투어 내란이 일어났다.
♞ 한양역력앵무주[漢陽歷歷鸚鵡洲] 당나라 최호(崔顥)의 황학루(黃鶴樓)에 “청천역력한양수, 방초처처앵무주(晴川歷歷漢陽水芳草萋萋鸚鵡洲)”라는 글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