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량[澤梁] 못에 설치한 어장(漁場).
♞ 택리인위미[擇里仁爲美] 논어(論語) 이인(里仁)에 “공자가 말하기를, ‘마을의 인심이 인후(仁厚)한 것이 아름다우니, 마을을 가려 산다고 하더라도 어진 마을에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 택목당[澤木堂] 택당이 여강(驪江) 가에 지은 택풍당(澤風堂)을 가리킨다. 주역(周易) 택풍대과괘(澤風大過卦)의 상사(象辭)에 “못의 물이 나무 위에까지 차오른다.[澤滅木]”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 택문구[澤門謳] 택문은 춘추 시대 송(宋) 나라 도성의 남문(南門)이다. 송 나라 재상 황국보(黃國父)가 평공(平公)을 위하여 대(臺)를 지으면서 백성의 추수(秋收) 일에 방해를 입히자, 대를 짓는 자들이 노래하기를 “택문의 얼굴 하얀 사람은 실로 우리에게 이 공사를 일으키었고 도읍 안의 얼굴 검은 사람은 실로 우리 마음을 위로해 주네.[澤門之晳 實興我役 邑中之黔 實慰我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左傳 襄公十七年>
♞ 택반[凙畔] 연못가. 초사(楚辭) 어부사(漁夫辭)의 “굴원이 쫓겨나 강담(江潭)에 노닐고 택반에서 심경을 노래하였다.”고 한 데서 나온 것으로, 벼슬에서 쫓겨나 지내는 궁벽한 물가를 말한다.
♞ 택반객[澤畔客] 조정에서 쫓겨나 실의(失意)의 나날을 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초(楚) 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굴원이 쫓겨난 다음에 강담(江潭)에서 노닐고 택반(澤畔)을 거닐며 읊조렸다.”고 하였다.
♞ 택반고[澤畔枯] 택반고는 초(楚) 나라 굴원(屈原)을 가리키는 말로 그의 ‘어부사(漁父辭)’에 “굴원이 조정에서 쫓겨나 택반(澤畔)에서 행음(行吟)할 적에 그 모습이 마른 나무등걸처럼 되었는데[形容枯槁], 이때 어부가 그를 알아보고는 탄식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 택반노[澤畔老] 초사(楚辭) 어부(漁夫)에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난 뒤 강담(江潭)에서 노닐고 택반(澤畔)에서 읊조렸다.”고 하였다.
♞ 택반다기적[澤畔多羈迹] 억울하게 조정에서 쫓겨나 불우한 나날을 보내는 인사들을 말한다.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난 뒤 강담(江潭)에서 노닐고 택반에서 행음(行吟)하였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楚辭 漁父辭>
♞ 택반신[澤畔身] 굴원의 어부사(漁父辭) 중에 “가고 가면서 택반(澤畔)에서 읊조릴 때, 안색은 초췌하고 형용은 고고(枯槁)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 택반음[澤畔吟] 전국 시대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방축(放逐)된 뒤 실의에 잠겨 강가에서 노닐고 못가에서 읊조렸던[游於江潭 行吟澤泮]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楚辭 漁夫>
♞ 택복견[澤腹堅] 인생의 막바지임을 뜻한 말이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끝겨울 달에는 수택(水澤)이 꽁꽁 얼어붙는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