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계[璜溪] 반계(磻溪)의 이칭이다. 태공 망(太公望)이 이곳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황옥(璜玉)을 얻었기 때문에 이렇게 일컫는다.
♞ 황계[荒鷄] 삼경(三更) 이전, 즉 새벽이 되기도 전에 우는 닭으로, 그 소리는 보통 악성(惡聲)이라고 하여 불길한 조짐으로 받아들여졌다.
♞ 황계[黃鷄] 진(晋)나라 조적(祖逖)이 밤에 유곤(劉琨)과 같이 자다가, 황계(荒雞)의 소리를 듣고 발로 유곤을 차서 일으키고 춤을 추면서 “이것은 나쁜 소리가 아니다. 황계는 새벽이 되기 전에 일찍 우는 닭을 말하는데 황계가 울면 난리가 난다.”고 하였으니, 이는 조적이 한 번 시세를 타서 공명을 세울 큰 뜻이 있는 것이었다.
♞ 황계백일세쟁영[黃雞白日歲崢嶸] 백거이(白居易)의 시(詩)에 “황계는 새벽을 재촉하고, 백일은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재촉한다.[黃鷄催曉丑時鳴 白日催年酉時沒]”고 하였다.
♞ 황계백일최[黃鷄白日催] 백거이(白居易)의 ‘취가(醉歌)’에 나오는 “누런 닭은 새벽을 재촉하여 오전 두 시에 울고, 하얀 해는 해를 재촉하여 오후 여섯 시에 진다.[黃鷄催曉丑時鳴 白日催年酉時沒]”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白樂天詩後集 卷1>
♞ 황고산[黃孤山] 황고산은 조선조 중종 때의 명필로 이름은 기로(耆老), 자는 태수(鮐叟), 본관은 덕산(德山), 고산은 그의 호다. 특히 초서를 잘 썼다.
♞ 황고집[黃固執] 황고집은 평양인(平壤人) 황순승(黃順承)의 별명으로, 성품이 아주 강직하여 그 당시 사람들이 황고집이라 하였다. 어느 명절날[節日] 새벽에 말을 타고 성묘(省墓)하러 가다가 평양 보통문 밖에서 도적을 만나자 말[馬]을 주면서 “의복은 제사를 지내야 하므로 주지 못하겠다.”고 하니, 도적이 황 고집인 줄을 알고 즉시 말을 돌려주고 달아났다고 한다. <松岳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