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양[龍陽] 남색을 용양(龍陽)이라 한다. 이것은 전국 시대의 위(魏) 나라에 행신(幸臣) 용양군(龍陽君)이 있어서 이로 인해 이름된 것이다.
♞ 용양[龍驤] 용양(龍驤)은 만곡(萬斛)이나 싣는 큰 배를 가리킨다. 진(晉) 나라 용양장군(龍驤將軍) 왕준(王濬)이 오(吳) 나라를 정벌할 적에 일찍이 큰 배를 만들어서 정벌하였다. <晉書 卷42 王濬列傳>
♞ 용양군[龍陽君] 위왕(魏王)이 남색(男色)인 용양군과 함께 배를 타고 낚시질하는데 용양군이 고기 십여 마리를 낚고는 눈물을 흘렸다. 위왕이 왜 우는냐고 묻자 “신이 처음 고기를 낚으매 매우 기뻐했지만 다음에 낚은 고기가 더욱 컸으므로, 신은 먼저 낚은 고기를 곧 버리고 싶었습니다. 신이 지금은 대왕의 침석(枕席)을 받들고 있지만 천하에는 미인(美人)이 많은지라 신이 대왕의 사랑하심을 받고 있음을 알면 모두 대왕에게 올 것입니다. 그러면 신도 앞에 낚은 고기와 같이 버려지게 될 것이니,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戰國策 魏策>
♞ 용양만곡[龍驤萬斛] 용양은 진 무제(晉武帝) 때의 용양장군 왕준(王濬)을 말하고, 만곡선은 대단히 큰 배를 가리키는데, 왕준이 일찍이 무제로부터 오(吳)를 정벌하라는 명을 받고, 사방이 20보(步)에 무려 2천 여명의 군사를 태울 수 있는 큰 배를 건조하여 오 나라를 쳐서 크게 승리했었다. <晉書 卷四十二>
♞ 용양목노[龍陽木奴] 목노(木奴)는 감귤(柑橘)의 별칭인데, 오(吳) 나라 단양태수(丹陽太守) 이형(李衡)이 용양현의 모래섬 20리 지경에 감귤나무를 심어놓고, 임종시에 자식에게 이르기를 “우리 마을에 목노 천 그루가 있으니, 의식(衣食)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