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산자해[鑄山煮海] 소식(蘇軾)의 ‘표충관비(表忠觀碑)’에 “산에서 채굴한 광석을 녹여 동을 만들고, 바다의 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등, …… 자원이 풍부하기가 천하에 으뜸이었다.[鑄山煮海 …… 甲於天下]”라는 말이 나온다.
♞ 주산지측[周山之側] 시전(詩傳)에 “우르릉 저 천둥소리가 남산 옆에서 나네.[殷其雷 在南山之側]”라고 하는 시가 있다. 이 시는 출정한 남편이 고생함을 민망히 여겨 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여인의 노래이나, 구설(舊說)은 뭇 선비들이 주문왕(周文王)의 어진 정사를 천둥에 비겨 주(周) 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시로 해석한다.
♞ 주생[周生] 주생은 당(唐) 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전하지 않는데, 도술(道術)이 있어 ‘구름을 타고 달을 취했다.[梯雲取月]’는 전설이 있다.
♞ 주서초모[誅鋤草茅] 띠풀을 호미질하여 없애다.
♞ 주선왕[周宣王] 기원전 827년부터 782년까지 재위했던 주나라의 11대 왕. 그 부왕은 려왕(厲王)으로서 위무(衛巫)를 시켜 공포정치를 한 결과 려왕은 국인들에게 쫓겨나 체(彘)라는 곳으로 달아났다. 그 해가 공화(共和) 원년인 기원전 841년이다. 사마천의 사기 중 제후연표(諸侯年表)는 이 해부터 시작되고 중국 역사도 모든 것이 이 해부터 분명하게 되었다. 또한 려왕이 체로 달아나자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왕을 대신해서 다스리다가 려왕이 체 땅에서 죽자 태자 정(靜)을 주왕으로 추대하고 주나라의 통치권을 돌려주었다. 태자 정이 주선왕이다. 한편 려왕이 달아나 왕 없이 다스린 기원전 841년부터 826년 까지의 14년간의 시기를 공화(共和)라 하여 지금 쓰고 있는 Rebpulic에 해당하는 공화국(共和國)의 어원이 되었다. 주나라는 주선왕의 아들인 유왕(幽王)대에 이르러 망하고 낙읍으로 동천하여 동주시대를 열었다.
♞ 주선왕[周宣王] 주(周) 나라를 중흥한 왕으로 노(魯) 나라의 난리를 평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