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후방[肘後方] 의서(醫書)의 이름이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편작(扁鵲)의 주후방 권과 갈홍(葛洪)의 주후방 6권을 실었고, 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유황(劉貺)의 주후방 3권을 기록하였는데, 모두 신선이 되는 비방(祕方)이라 한다.
♞ 주후방[肘後方]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의 준말로, 진(晉) 나라 갈홍(葛洪)이 지은 의서(醫書)이다.
♞ 주후혜문[柱後惠文] 법관(法官)과 무관(武官)이 쓰는 모자이다. 장창(張敞)의 동생 장무(張武)가 양국(梁國)의 상(相)으로 나가면서 “양국은 대도(大都)로서 이민(吏民)이 조폐(凋敝)한 상태이니, 마땅히 주후혜문(柱後惠文)으로 탄치(彈治)해야 한다.”고 말하자, 장창이 이를 듣고서 웃으며 안심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張敞傳>
♞ 주후혜문관[柱後惠文冠] 옛날 법관(法官)이 쓰던 관이다.
♞ 주휘[麈麾] 일명 주미(麈尾)라고도 하는데, 가늘고 기다란 나무 끝에 사슴의 꼬리털을 달아 부채 비슷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먼지떨이·파리채로 썼으나 뒤에는 불도(佛徒)들의 위의를 정돈하는 기구가 되었다.
♞ 주휘[朱暉] 후한 명제(後漢明帝) 때 남양(南陽) 원현(宛縣) 사람으로 자는 문계(文季)이다. 임회태수(臨淮太守)로 있으면서 정사를 잘하여 그곳 관리와 백성들이 존경하고 사랑한 나머지 노래를 지어 부르기를 “강직으로 이룬 사람 남양 땅의 주계로세, 관리 위엄 존경하고 백성 은혜 기린다네.[彊直自遂 南陽朱季 吏畏其威 人懷其惠]”라고 하였다 한다. 주계라고 한 것은 그의 자가 문계이기 때문이다. <後漢書 卷四十三 朱暉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