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산[中山] 한 잔만 마시면 1천일 동안을 취한다는 중산에서 나는 술을 가리킨 말이다. 박물지(博物志)에 “유현석(劉玄石)이라는 사람이 중산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취해서 죽은 듯이 쓰러지자 가족들은 그가 죽은 줄만 알고 장례를 치렀는데, 3년 만에 그 술집에서 그 집을 찾아가 무덤을 파보니, 그제야 술이 깨었다.”라고 하였다.
♞ 중산국[中山國] 전국시대 때 지금의 하북성 정현(定縣)과 당현(唐縣) 일대에 있었던 이족(夷族)의 제후국으로써 위나라 위문후(魏文侯) 19년 기원전 406년 위나라의 장수 악양(樂羊)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영토는 위(魏)나라에 편입되었다. 후에 중산국의 후손들이 원래의 위치에서 서쪽인 지금의 하북성 평산현(平山縣) 경내인 영수(靈壽)라는 곳에 나라를 다시 세워 명맥을 유지했으나 기원전 296년 조나라의 무령왕(武靈王)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그 영토는 조나라에 편입되었다. 위문후의 명을 받아 악양이 중산국을 정벌할 때 중산국의 군주가 악양(樂羊)의 아들을 죽인 후 끓여 만든 인육탕을 보내자 그 국물을 마시고 중산국을 정벌한 이야기가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 실려있다.
♞ 중산방만낙양서[中山謗滿樂羊書] 전국 시대 위(魏) 나라 악양(樂羊)이 중산을 쳐서 3년 만에 그를 함락시키고 돌아와 문후(文侯)에게 보고하자, 문후가 상자에 가득찬 방서(謗書)를 보이니, 악양이 재배(再拜)하면서 “중산을 격파한 것은 신(臣)의 공이 아니라 임금의 공입니다.”라고 하며, 그 많은 중상의 투서를 받고도 임금이 끝내 자신을 의심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였다. <史記 卷七十一 甘茂傳>
♞ 중산의갈부[中山衣褐夫] 중산은 지명으로 품질 좋은 붓을 생산하던 곳이고, 의갈부란 털옷을 입었다는 뜻으로 즉 토끼를 의인화(擬人化)하여 이른 말이다.
♞ 중산참방[中山讒謗] 터무니없이 날조하여 참소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 시대에 위(魏) 나라 악양(樂羊)이 중산(中山)을 정벌하러 나간 지 3년 만에 승리를 거두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니, 위 문후(魏文侯)가 그동안 신하들이 그에 대해서 참소한 글 한 상자를 꺼내 보여 준 고사가 있다. <呂氏春秋 樂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