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악[華嶽] 중국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오악(五嶽)의 하나이다.
♞ 화악[龢樂] 화악은 오음(五音)을 가지고 악곡(樂曲)을 조율시키는 것을 말한 것으로, 국어(國語) 주어(周語)에 “오성으로 악을 고르고 율로써 오성을 균평하게 한다.[聲以龢樂 律以平聲]”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화악루[花萼樓] 당 나라 양황제(讓皇帝)가 흥경궁(興慶宮) 서남쪽에 다락을 짓고 화악상휘지루(花萼相輝之樓)라 제액(題額)하였다. 제왕(諸王)들이 풍류를 아뢰면 반드시 곧 불러 다락에 오르라 하여 같은 탑(榻)에 앉아 즐기며 황금과 비단을 하사한 고사가 전한다. 화악(花萼)이란 이름은 대개 시경(詩經)에 있는 상체의 꽃[常棣之華]의 뜻을 취한 것인데 상체꽃은 형제의 우애(友愛)에 비유한 것이다. <舊唐書 讓皇帝憲傳>
♞ 화양[華陽] 은자(隱者)가 사는 곳을 가리킨다. 양(梁)의 도홍경(陶弘景)이 구곡산(句曲山)에 숨어살며 자호를 화양은거(華陽隱居)라고 하고, 무제(武帝)가 예를 갖추어 맞이하려했으나 끝내 나오지 않았다. <梁書 陶弘景傳>
♞ 화양건[華陽巾] 은자(隱者)가 쓰는 두건. 신선전(神仙傳)에 “경조(京兆)사람인 위절(韋節)이 화산(華山)의 남쪽 기슭에 은거하면서 호를 하양자(華陽子)라고 하였으며, 그가 쓰고 다니는 두건을 화양건이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 화양군[華陽君]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262년에 죽은 진나라의 대신이다. 미(羋) 성에 이름은 융(戎)이다. 소양왕의 모친 선태후의 동부(同父) 동생으로 소양왕에게는 외삼촌이 된다. 봉지의 이름을 따라서 엽양군(葉陽君) 혹은 신성군(新城君)이라고도 불리웠다. 처음에 진나라에 죄를 짓고 초나라에 망명했다가 소양왕이 즉위하자 권력을 잡은 선태후에 의해 진나라에 돌아와 선태후의 총애를 받았다. 소양왕 8년 기원전 299년 장군이 되어 초나라를 공략하여 신시(新市 : 지금의 호북성 경산京山 동북)를 점령했다. 후에 벼슬이 좌승상까지 올라 권세가 더욱 커져 그의 재산은 공실의 것보다 더 많게 되어, 위염(魏冉), 경양군(涇陽君) 공자시(公子市), 고릉군(高陵君) 공자회(公子悝) 등과 함께 진나라의 사귀(四貴)라 불리웠다. 소양왕 41년 범수의 계책을 채용한 소양왕이 그의 권력을 박탈했다. 선태후가 죽자 지위가 강등되어 조정에서 쫓겨났으며 다시 소양왕 45년에는 함양에서 쫓겨나 봉지로 가다가 도중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