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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에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
- 장자(외편) 제17편 추수[7]-
황하의 신이 말했다. “저는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제가 사양하거나 밟고 나아가거나 멈추는데 있어서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북해의 신이 말했다. “도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을 천히 여기겠는가? 이런 경지를 혼돈하게 통일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 뜻에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도에 크게 어긋나게 된다. 도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을 적다하고 무엇을 많다 하겠는가? 이런 경지를 구별 없이 연결되는 상태라 말하는 것이다. 한편에만 치우치는 행동을 하여서는 안 된다. 그러면 도에 어긋나게 된다. 엄격하기가 나라의 임금과 같아서 사사로운 은덕을 베푸는 일이 없어야 한다. 유유자득하기가 제사를 받는 땅의 신과 같아서 사사로이 복을 내려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대범하기가 사방이 끝없는 것과 같아서 아무런 한계도 없어야 한다. 만물을 다 같아 아울러 감싸서 그 어떤 사람만을 아껴주거나 도와 주는 일이 없으면 이것을 두고 일정한 넓이가 없는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만물은 한결같이 평등한 것이니, 어느 것이 못하고 어느 것이 더 나은가? 도에는 시작도 끝도 없지만 물건에는 삶과 죽음이 있다. 그래서 물건의 공용이란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비어 있다가도 어떤 때는 차게 마련이어서 그 형세에는 일정한 위치가 없다. 늙어 가는 나이는 막을 수가 없고, 흘러가는 시간은 멈출 수가 없다. 생성소멸과 찼다가는 비는 일을 반복하여 그치면 또 시작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위대한 도의 뜻을 얘기하고 만물의 이치를 논하는 까닭인 것이다. 물건의 생성은 말이 뛰거나 달리는 것처럼 변화한다.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란 없고, 잠시도 바뀌지 않는 것이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하겠는가? 그대로 스스로 변화하게 내버려두면 그만이다.”
- 莊子(外篇) 第17篇 秋水[7]- 河伯曰:「然則我何爲乎, 何不爲乎? 吾辭受趣舍, 吾終奈何?」 北海若曰:「以道觀之, 何貴何賤, 是謂反衍. 无拘而志, 與道大蹇. 何少何多, 是謂謝施. 無一而行, 與道參差. 嚴嚴乎若國之有君, 其无私德. 繇繇乎若祭之有社, 其无私福. 泛泛乎其若砂防之无窮, 其无所畛域. 兼懷萬物, 其孰承翼? 是謂无方. 萬物一齊, 孰短孰長? 道无終始, 物有死生, 不恃其成. 一虛一盈, 不位乎其形. 年不可擧, 時不可止. 消息盈虛, 終則有始. 是所以語大義之方, 論萬物之理也. 物之生也, 若驟若馳, 无動而不變, 无時而不移. 何爲乎, 何不爲乎? 夫固將自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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