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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방법을 따르되 합치시키려 들지 마라
- 장자(잡편) 제24편 서무귀[11]-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초나라 임금이 공자를 위해 잔치를 벌였다. 손숙오가 술잔을 들고 서 있었고, 시남의료가 술잔을 받아 땅에 부어 제사를 올리면서 말했다. “옛날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에 무엇이라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저는 말로 표현하지 않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태껏 이것에 대하여 말해본 일이 없으니, 여기에서 그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남 의료께서는 구슬놀이를 하여 초나라와 송나라의 전쟁을 해결하였다 합니다. 손숙오께서는 깃부채를 들고 달게 잠을 자면서도 영땅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을 무기를 버리도록 만들었다 합니다. 제게 석자 길이의 입이 있다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행동은 도라고 드러나지 않는 도이며, 공자의 말은 말로 표현하지 않는 이론인 것이다. 그러므로 덕이란 도로써 통일되어 있는 곳에 총합되고, 이론이란 지혜로써 알 수 없는 경지에 머물러야만 지극한 것이다. 도가 통일되어 있는 곳이라면 덕은 함께 합쳐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혜로써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이론으로써는 밝혀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 없이 덕을 세우고, 알지 못하면서 이론을 내세워 명분을 찾는 유가나 묵가는 흉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다가 흘러드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고도 변함이 없는 것은 광대함의 극치인 것이다. 성인은 하늘과 땅을 아울러 포괄하고, 은택을 온 천하에 미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서는 아무런 벼슬도 없고, 죽어서도 아무런 시호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재물을 모으지도 않고, 명예를 세우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 부른다. 개가 잘 짖는다고 좋은 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말을 잘 한다 해서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위대함이야 말과 상관이 있겠는가? 스스로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위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스스로 내세우는 것이야 덕이 되겠는가? 위대하게 갖추어져 있기로는 하늘과 땅보다 더 한 것이 없다. 그러나 무엇을 추구하여 위대하게 갖추어진 것인가? 위대하게 갖추어짐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추구하는 것이 없고, 잃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어야 하며, 외물로 말미암아 자기의 본성을 바꾸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자기 본성으로 되돌아옴으로써 자연스럽게 막히는 일이 없고, 옛 방법을 따르되 옛 방법에 합치시키려 들지 않는 것이 위대한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다.
- 莊子(雜篇) 第24篇 徐無鬼[11]- 仲尼之楚, 楚王觴之, 孫叔敖執爵而立, 市南宜僚受酒而祭曰:「古之人乎! 於此言已.」 曰:「丘也聞不言之言矣, 未之嘗言, 於此乎言之. 市南宜僚弄丸而兩家之難解, 孫叔敖甘寢秉羽而郢人投兵. 丘願有喙三尺!」 彼之謂不道之道, 此之謂不言之辯, 故德總乎道之所一. 而言休乎知之所不知, 至矣. 道之所一者, 德不能同也. 知之所不能知者, 辯不能擧也. 名若儒墨而凶矣. 故海不辭東流, 大之至也. 聖人幷包天地, 澤及天下, 而不知其誰氏. 是故生无爵, 死无諡, 實不聚, 名不立, 此之謂大人. 狗不以善吠爲良, 人不以善言爲賢, 而況爲大乎! 夫爲大不足以爲大, 而況爲德乎! 夫大莫若天地, 然奚求焉而大備矣. 知大備者, 无求, 无失, 无棄, 不以物易己也. 反己而不窮, 循古而不摩, 大人之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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