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관[劉寬] 유관은 후한 때 사람으로 성품이 본디 관후하여 그가 남양태수(南陽太守)로 있을 적에 이민(吏民)들이 혹 과실이 있으면, 때려도 아프지 않도록 부들 회초리로 때려서 수치심만 느끼게 했다 한다.
♞ 유관[劉冠] 한 고조(漢高祖)가 평민이었을 때 쓰고 다니던 관이다.
♞ 유관[楡關] 산해관(山海關)을 이름이니, 중국 하북성(河北省) 임유현(臨楡縣)에 있다. 투관(渝關)이라고도 한다. <史記 楚世家>
♞ 유관오[儒冠誤] 유관은 유자(儒者)가 쓰는 갓인데, 유학(儒學)을 배웠기 때문에 궁하게 사는 것을 ‘유관이 평생을 그르쳤다’고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귀족이야 굶어 죽는 일이 없겠지만, 선비들은 잘못되는 경우가 많아.[紈袴不餓死 儒冠多誤身]”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1 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
♞ 유관오신[儒冠誤身] 두보의 시에 “선비의 관이 몸을 그르침이 많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유자(儒者)가 공명(功名)과 처세를 잘 못한다는 뜻이다.
♞ 유광[劉光] 원(元) 나라 때 사람. 자는 원휘(劉元)이다.
♞ 유광[由光] 허유와 무광이다. 허유는 당요(唐堯) 때 은자(隱者), 무광은 은탕(殷湯) 때 은자이다.
♞ 유교무류[有敎無類] 모든 사람을 가르쳐 이끌어 줄 뿐 가르치는 상대에게 차별을 두는 일이 없음을 이른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배움의 문이 개방되어 있다는 공자의 말이다. 호향(互鄕)이란 곳은 풍기가 문란하고 천한 직업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어느 날 그곳에 사는 한 아이가 공자를 만나러 왔기 때문에 제자들이 돌려보내려고 했으나 공자는 그 아이를 맞아 그가 묻는 말에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제자들이 공자의 이러한 태도를 보고 의아해 하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깨끗한 마음으로 찾아오면 그 마음만을 받아들이면 됐지 그 사람의 과거와 행동까지 따질 것이 있느냐.”라고 공자는 제자들의 차별의식을 안타까워했다. <論語 衛靈公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