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子游] 노(魯) 나라 때 공자의 제자인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예악(禮樂)으로 가르쳤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모두 현가(絃歌)하였다고 한다. <論語 陽貨>
♞ 자유[子猷] 자유는 진(晉) 나라 왕희지(王羲之)의 아들인 왕휘지(王徽之)의 자(字)이다. 그가 회계(會稽)에 있을 때 밤에 눈이 내리자 친구인 대규(戴逵) 생각이 나서 섬계(剡溪)까지 배를 타고 갔다가 문 앞에서 그냥 돌아왔는데 그 이유를 묻자 “흥이 일어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왔다.[乘興而行 興盡而返]”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任誕>
♞ 자유[子游] 자유는 춘추시대 오(吳)나라 사람으로 성은 언(言), 이름은 언(偃)이고, 공자의 제자이다. 공자에게서 학문을 배운 뒤에 노 나라 무성 읍재(武城邑宰)가 되어 그 지방을 예악(禮樂)으로 다스렸고, 유약(有若)의 장례 때 상례를 맡았다. <史記 卷六十七 仲尼弟子列傳>
♞ 자유섬계[子猷剡溪] 자유는 진(晉) 나라 왕휘지(王徽之)의 자(字)로 산음(山陰)에 살고 있었다. 섬계는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조아강(曹娥江)의 상류인데, 이곳에 대규(戴逵)가 살고 있었으므로 대계(戴溪)라 하기도 한다. 한번은 왕휘지가 눈오는 밤에 친구 대규를 찾아 섬계에 배를 띄우고 갔다가 문 앞에 이르러 되돌아왔다. 사람이 이유를 묻자, 그는 “흥이 있어 왔다가 흥이 다하므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였다. <晉書 王徽之傳>
♞ 자유유섬계[子猷遊剡溪] 자유는 왕휘지(王徽之)의 자(字)이다. 왕휘지가 설야(雪夜)에 섬계로 대규(戴逵)를 찾아간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