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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천지공[貪天之功]하늘의 공을 탐낸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은 오랜 유랑 끝에 의형인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주선으로 귀국하여 즉위하게 되었다. 아버지 헌공(獻公)에 의해 국외로 추방되어 19년이란 오랜 유랑 끝에 돌아온 그는 즉위한 후 많은 현신을 등용하고, 망명을 함께 한 자나 자금을 제공한 자에서부터 귀국을 환영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공평하게 논공행상했다. 그리고 행여 누락된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해당자는 신고하라고 포고했다. 이때 문공과 함께 망명을 한 개자추(介子推)라는 충신이 빠져 있어서, 그 이웃 사람이 포고를 보고 개자추에게 알렸다. 개자추는 문공이 귀국한 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것을 불쾌히 여겨, 벼슬할 뜻을 버리고 어머니와 함께 청빈하게 살고 있었다. 그의 가난한 생활을 안타깝게 여긴 이웃 사람이 당국에 신고할 것을 권유해도 그는 웃으며 상대하지 않았다. 이에 그의 어머니가 물었다. “너는 망명 생활 중 굶주린 문공에게 허벅지 살을 베어 바칠 만큼 큰 공로가 있었는데 왜 공을 말하지 않느냐?” 그러자 개자추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헌공(獻公)의 9공자 중 문공이 가장 현명한 분이시니 오늘의 즉위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두들 자신의 공로인 양 말하고 있습니다. 군주에 대해 탐천지공(貪天之功)을 다투는 것은 도둑질을 하는 것보다도 더 수치스러운 행위입니다. 차라리 짚신을 삼는 편이 훨씬 즐겁습니다.” 개자추의 마음을 이해한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면산(綿山) 깊숙이 들어가 은둔하여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이 일을 알게 된 문공은 개자추를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면산에 불을 질렀으나, 그는 끝내 나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불에 타 죽었다. 한식(寒食)은 불에 타 죽은 개자추의 혼령을 위로하는 날로, 이 날은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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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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