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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이가 왕을 가련히 여긴다
- 한비자 제14편 간겁시신[9]-
속담에「문둥이가 왕을 가련히 여긴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불손한 말이기는 하지만 속담에는 진리가 있으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위협을 받거나 죽음을 당한 비운의 군주를 가리켜 하는 말인 것이다. 군주가 법술로서 신하를 통제하지 않으면 비록 그 군주가 상당한 연배이며 탁월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대신은 여전히 세도를 부릴 것이며, 정무를 멋대로 처리하고 각자 사사로운 일에 열중할 것이다. 그리고 군주의 백숙부, 형제나 훌륭한 법술사가 군주의 힘을 빌어 자기를 못살게 굴거나 죽이지나 않을까 하여, 현명하고 연장의 군주를 죽이고 어린 자식을 추대하던가 또는 정당한 적자를 물리치고, 엉터리를 데려다가 군주로 추대하는 것이다. 춘추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초나라의 왕자 위가 사절로 정나라로 출발했는데, 국경을 넘기 전에 초왕이 중병이라는 기별을 듣고, 급히 돌아와 곧 왕의 침실로 들어가 관의 끈으로 왕의 목을 졸라 죽이고 마침내 자기가 왕위에 올랐다. 제나라의 최저의 아내는 미인이었다. 그런데 장왕은 그녀와 밀통하기 위하여 종종 최씨 집을 방문했다. 어느날 왕이 그 집에 갔을 때 최씨의 부하 가거는 최씨의 일당과 더불어 장왕을 습격했다. 왕은 다른 방으로 도망치면서 나라의 절반을 줄테니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으나, 최저는 듣지 않았다. 그래서 종묘에서 자살할 테니 용서해 달라고 말했으나 최저는 역시 듣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장왕은 방에서 뛰쳐나와 도망치려고 북쪽 담을 넘으려 하는 것을 가거가 쏘아 죽이고 말았다. 화살은 왕의 사타구니에 명중했다. 왕이 담에서 굴러떨어지자 최씨 일당은 도끼로 찍어 죽이고 그 아우인 경공을 왕으로 추대한 것이다. 근래의 일을 예로 든다면 이태가 조나라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을 때에는 그 군주의 부친을 사구의 궁전에 유폐하여 굶기기를 백일 동안 하니 죽어버렸다. 요치가 제나라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을 무렵 민왕의 목뼈를 뽑아 종묘의 기둥에 매달아 놓았더니 이튿날 죽었다고 한다. 이상의 사건을 통해서 생각하건대, 문둥이는 종기가 부르트고 고름이 흐르고 있기는 하지만, 춘추시대의 초왕이나 장왕에 비교하면, 그들처럼 목졸려 죽음을 당하거나 사타구니를 맞아 죽지는 않았으며, 또 근래의 민왕들과 비교할 때 그들처럼 굶어죽거나 목뼈를 뽑혀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위협을 당한 끝에 죽게 되는 군주들을 보면, 그 정신상의 불안과 공포, 육체상의 고통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문둥이들 보다 심한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문둥이가 왕을 가련하다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 韓非子 第14篇 姦劫弑臣[9]- 諺曰:「厲憐王.」 此不恭之言也. 雖然, 古無虛諺, 不可不察也. 此謂劫殺死亡之主言也. 人主無法術以御其臣, 雖長年而美材, 大臣猶將得勢擅事主斷, 而各爲其私急. 而恐父兄豪傑之士, 借人主之力, 以禁誅於己也. 故弑賢長而立幼弱, 廢正的而立不義. 故< 春秋> 記之曰:「楚王子圍將聘於鄭, 未出境, 聞王病而反. 因入問病, 以其冠纓絞王而殺之, 遂自立也. 齊崔杼其妻美, 而莊公通之, 數如崔氏之室. 及公往, 崔子之徒, 賈擧率崔子之徒而攻公. 公入室, 請與之分國, 崔子不許 公請自刃於廟, 崔子又不聽 公乃走, 踰於北牆. 賈擧射公, 中其股, 公墜, 崔子之徒以戈斫公而死之, 而立其弟景公.」 近之所見: 李兌之用趙也, 餓主父百日而死, 卓齒之用齊也, 擢王之筋, 懸之廟梁, 宿昔而死. 故厲雖*옹腫疕瘍, 上比於< 春秋> , 未至於絞頸射股也 下比於近世, 未至餓死擢筋也. 故劫殺死亡之君, 此其心之憂懼, 形之苦痛也, 必甚於厲矣. 由此觀之, 雖「厲憐王」 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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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 잡문 / 한시 / 한시채집 / 시조 등 / 법구경 / 벽암록 / 무문관 / 노자 / 장자 / 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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