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주삼곡용[魏犨三曲踊]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8년 하 4월 조(條)에, “진 문공(晉文公)이 초 나라와 성복(城濮)에서 싸울 적에 조(曹)에 들어가서는 조에서 희부기(僖負羈)를 등용하지 않은 데 대한 죄를 따지고, 군사들에게 희부기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서, 지난날에 희부기에게 받은 은혜를 갚았다. 그러자 위주와 전힐이 이에 노해 희부기의 집을 불태웠는데, 위주가 가슴에 상처를 입었다. 진 문공이 위주와 전힐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위주의 재주를 아까워하여 사신을 보내어서 상황을 살펴보게 하고 위주가 병들었으면 장차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위주가 가슴의 상처를 싸매고는 사자를 만나서 ‘임금의 위령에 힘입었는데 어찌 편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하면서 삼백 번을 멀리 뛰고 삼백 번을 높이 뛰었다. 이에 진 문공이 위주는 죽이지 않고 전힐만 죽인 다음 군중에게 조리를 돌렸다.”하였다.
♞위주환완적[爲酒宦阮籍] 진(晋)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한 사람인 완적이 매우 술을 좋아하여, 보병교위영(步兵校尉營)에는 술 3백 석을 저장해 두었다는 말을 듣고 자청하여 보병교위가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晋書 卷四十九>
♞위주환유치완적[爲酒宦遊嗤阮籍] 진(晋) 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한 사람인 완적이 매우 술을 좋아하여, 보병교위영(步兵校尉營)에는 술 3백 석을 저장해 두었다는 말을 듣고 자청하여 보병교위가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晋書 卷四十九>